여호와 살롬을 보여주세요 사사기 8:22-28 우리는 여름성경학교의 주제 ‘여호와 살롬’에 맞추어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호와 살롬을 보여주세요’라는 제목입니다. 이는 여호와 살롬을 받은 자로 여호와 살롬을 이루는 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살롬을 잃어버리고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 살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평안하고 행복한 것은 사람이나 재물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43장 5절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게는 낙심과 불안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는 용기와 평안이 있습니다. 현대의 비극은 하나님이 없는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살롬을 주셨습니다. 욥기 3장 26절은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라고 합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들과 재산과 건강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악담을 퍼붓고 떠났습니다. 친구들은 찾아와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이에 욥은 평안도 안전도 안식도 없었습니다. 오직 불안만 있었습니다. 그런 욥이 절망하지 않고 평안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욥기 1장 21절과 22절은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평안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도 소중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다시 평안과 안전과 안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살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셔서 사사로 부르신 것은 여호와 살롬을 주시고, 이루는 자로 살게 하려는 것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 살롬을 받은 자로 살롬을 이루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 빌레몬은 어떠했습니까? 빌레몬서 1장 7절은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고 합니다. 빌레몬에게는 주 예수에 대한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교제는 선한 것을 깨달아 그리스도께 나오도록 했습니다. 또한 성도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평안과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게 했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롬, 즉 평안을 경험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평안합니다. 마음이 기쁩니다.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평안을 주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의 교제와 사랑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기도온은 여호와 살롬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까? 첫째, 기드온은 우상과 제단을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은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기도온을 향해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기드온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 살롬, 즉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오고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을 위하여 규례대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종 열 명과 함께 밤에 우상과 제단을 파괴하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6장 32절은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고 합니다. 아침이 일어난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누구의 소행인지 캐어 물었습니다. 그것이 기드온이 한 소행이라는 것을 안 사람들은 그를 여룹바알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바알에게 대항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롬을 잃어버렸던 것은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제단을 쌓은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우상과 제단을 파괴함으로 살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살롬은 우상을 파괴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것에 있습니다. 바울은 우상에 대해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골로새서 3장 5절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성도들은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입니다. 특히 탐심은 우상 숭배이기에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탐심이 우상 숭배인 것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추구하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탐심, 즉 탐욕스러운 욕망이 있으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즐기며 가지며 누려야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할까? 불안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 불안합니다. 그것은 자신만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회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자족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고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드온이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여호와 살롬을 회복하기 위해 사사가 되었을 때 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이 침공하게 되었습니다(6:33-35). 이에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양털과 이슬에 대한 표징을 요구했습니다(6:36-40). 또한 그들과 전쟁하기 위해 군사를 선발하게 되었습니다(7:1-8).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전쟁하는 것에 두려워하는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돌려보내고 만 명만 남겼습니다. 그리고 후에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대고 핥아먹는 삼백 명을 제외하고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기드온은 부하 부라와 함께 미디안과 아말렉의 진영으로 내려가다 어떤 사람이 꾸고 해몽한 보리떡에 대한 꿈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했습니다(7:9-15). 이에 삼백 명의 군사들에게 항아리와 나팔로 무장하게 하고 전쟁을 했으며 승리하게 되었습니다(7:16-25) 하나님께서 삼백 명을 데리고 전쟁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7장 2절은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온을 따르는 삼만 이천 명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삼백 명의 군사로 전쟁을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교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사람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있기에 평안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이 함께 하실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안할 수 있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명기 25장 18절은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갈 때 피곤하여 뒤에 처져 있는 연약한 자들을 공격했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적하는 악한 마귀와 세상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패하면 불안과 불행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뜻과 계획은 사람이 불안과 불행한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평안과 행복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뒤처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안과 행복한 신앙과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기드온은 내부의 갈등을 해소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8장 1절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고 합니다. 그들은 기드온을 향해 미디안과 전쟁하러 갈 때 부르지 않은 이유를 따졌습니다. 자신들을 대접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기업으로 받은 영토가 다른 지파에 비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국을 분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악한 습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가장 큰 지파였으며 므낫세 지파는 작은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과 갈등을 지혜로운 말로 이해시키고 해소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갈등하지 않고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떠해야 합니까? 사도행전 9장 31절은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교회를 박해하는 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바울로 인해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고 든든히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령의 위로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평안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견고히 설 수 있으며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불안하게 하는 자가 아니라 평안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한 일이 귀하게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기드온은 특별한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8장 23절은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평안하게 한 기드온과 아들들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는 왕으로 자신을 통치하여 평안하게 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다스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왕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성공이요 특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다스리는 곳에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 즉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순종할 때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기드온은 특권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평안이 깨어지는 것은 겸손이 헌신하는 자가 아니라 교만하여 다스리고 주장하고 요구하는 자로 인한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교만한 자가 아니라 겸손한 자가 되어 평안하게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언제 평안할 수 있습니까? 골로새서 1장 18절은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근본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만이 으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할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되고 서로를 섬김을 통해 평안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기드온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는데, 백성들이 우상으로 섬기게 되어 올무가 되었습니다. 많은 아내를 두어 자녀가 칠십 명이었습니다. 첩을 통해 낳은 아비멜렉은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의 생각과 계획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윤리와 행동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이 살아 있는 40년 동안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을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평안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0장 12절과 13절은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시면서 어떤 집에 들어가면 평안을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그 집이 평안을 받기에 합당하면 임할 것이며, 합당하지 않으면 평안이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평안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안을 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평안을 빌고 평안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 살롬을 구하고 받고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특히 여호와 살롬의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살롬을 이루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불안하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살롬의 은혜를 선포하고 이루고 누리게 하는 일에 귀하에 쓰임을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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