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관심과 가치입니다 빌립보서 1:12-30 인간은 가치 지향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은 우리 안에 있는 관심과 가치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갑니다.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관심과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복음에 최고의 관심과 가치를 두고 살았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입니다. 하지만 전에는 복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복음에 관심과 가치를 두고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바울의 모든 관심은, 모든 열정은, 모든 소망은 오직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이 관심과 가치를 두었던 복음 전파에 관해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관심과 가치를 갖고 전파했던 복음을 우리도 관심을 두고 가치 있게 여기고 전파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많은 박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자신이 당한 환난과 핍박에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12절은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 관심은 복음 전파에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감사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한 그 일을 통해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던 것을 다른 성도들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일을 우리도 알고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에 진전을 이루기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첫째, 괴로움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많은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가 당한 괴로움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괴로움입니다. 13절은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매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써서 보낸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안질과 간질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는 괴로움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만 아니었습니다. 둘째는, 마음의 괴로움입니다. 15절과 17절은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고 합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자 순수한 마음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투기와 분쟁으로,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기 위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은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을 나타낼 좋은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시기하며 경쟁하듯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렇게 악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괴로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결과를 이루느냐? 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어떤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 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 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순수한 동기와 목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의 괴로움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히게 된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시기하고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8절은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가식적으로 하든, 진실한 마음으로 하든 전파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다면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어 복음 전파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복음 전파을 위해 인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갈등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복음 전파를 위한 거룩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23절은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라고 합니다. 그의 갈등은 복음 전파를 위해 많은 환난과 핍박으로 인해 지쳐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 계신 그곳에 대해 사모함으로 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는 너무 힘들고 괴로워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에게 더 있었던 갈등은 무엇입니까? 24절은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합니다. 바울은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있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감으로 복음 전파의 진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진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유익하지만, 복음을 위해 세상에 있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며, 복음 전파를 위해 유익이 된다면 상관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 의 문제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한 고통과 갈등에 관해 언급한 후에 복음에 합당하게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알고 믿고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에 합당한 생활도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협력하는 것입니다. 27절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라고 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즉 서로 격려하며 용기를 주며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제주 복음화를 위해,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둘째,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28절은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인해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가정이나 직장이나 학교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29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할 거룩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고난, 복음을 위한 고난은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주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한 고난을 은혜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거룩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복음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듣고 믿어야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치유와 회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최고의 헌신이며, 가장 위대한 사역입니다. 리처드 칼슨이 쓴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은 사소한 것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고 목숨을 걸고 살기에 오히려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합니다.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어느 교회 홈페이지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을, 모든 일에 사랑을!”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비본질적인 것에 관심과 가치를 두고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복음이 본질입니다. 그것보다 더 관심과 가치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이 괴로움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에 있었습니다.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의 핵심은 복음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가치가 복음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관심과 가치를 두었으면 합니다. 그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합니다. 그 일을 중심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에 우리의 관심과 가치를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