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라 사도행전 4:13-22 예화) 객기일까? 용기일까? 객기와 용기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객기(客氣)는 ‘공연히 부리는 호기’로 보통 말도 안 되는 일에 도전하는 무모한 용기입니다. 결국 실패하거나 실패한 것이 뻔한 행동입니다. 반면에 용기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혹은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고 합니다. 플라톤은 용기를 ‘두려워해야 할 대상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대상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인간적으로 보면 객기이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온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대단한 사건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공회에 넘겨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전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사도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배경과 상황에서 그 당시 사도들과 성도들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수고를 했으며, 최상의 결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 겪는 환난과 고난을 복음 전파의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복음의 확장을 위한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역사를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담대함 즉 거룩한 용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있었던 거룩한 용기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용기를 통해 위대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3절은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라고 합니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규적인 랍비 교육을 받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비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했으며 사람들은 놀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담대하게 확신에 찬 모습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대단한 성도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많이 배우고, 많이 소유하고, 유명한 사람들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베드로나 요한을 부르시고 사용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면 비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가 낫게 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14절은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 곁에 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은 사람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그를 대적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비난의 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진리이며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삶으로 복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비난하던 사람들의 입을 막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16절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던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공회에서 심문하던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들 곁에 있는 사람이 치유 받은 것은 유명한 표적으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전하는 복음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복음은 관점이나 철학이 아니라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그 복음을 전할 때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위협과 경고를 했습니다 17절과 18절은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퍼지지’라고 하는 것은 전염병이 다른 사람에게 급속하게 전염되는 것처럼 옮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으로 인해 예수님의 복음과 능력은 전염병이 번지듯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비난할 수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 것을 위협하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위협하고 경고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19절과 20절은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라고 합니다. 이들은 매우 담대하게 용기를 가지고 자신들을 위협하고 경고하는 사람들을 향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한 자의 신앙적인 반응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한 반응입니다. 거룩한 용기를 가진 자의 영적인 반응입니다. 이런 담대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까? 첫째, 하나님 앞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앞에서’라고 합니다. 그는 지금 유대 지도자들 앞에 서 있으나 실상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 살아가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신전 의식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합니다. 거룩한 용기와 담대함을 갖고 복음을 전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 무엇이 더 옳은 것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확신할 수 있었기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 담대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그것이 진실이며 진리라는 확신이 있으면 담대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진리입니다. 복음은 진실입니다. 이에 우리는 사람이나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용기를 갖고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의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이 반드시 어떤 경우에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이나 상대 앞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예전의 베드로는 겁쟁이였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 고기잡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패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의 경험은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자신이 살기 위해 예수님을 버리던 자에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자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한 사람의 인생과 사명을 그리고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변화와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