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8) :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창세기 32:1-12 우리의 인생에 있어 최대 위기는 무엇일까요? 홈즈-라헤의 스트레스 지수에 의하면 배우자의 사망(100), 이론(73), 별거(65), 감옥살이(63), 가족의 사망(63), 자신의 부상이나 질병(53), 결혼(50)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스트레스는 생명과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음에 직면하는 상황은 두렵고 절망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위기에 처한 야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을 떠나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절과 2절은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에게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고 “이는 하나님의 군대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에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길에 동행하며 보호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천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히브리서 1장 14절은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라고 합니다. 천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성도들을 섬기고 보호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야곱이 가는 길에 용기를 주고 인도하실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보호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동행하며 인도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밧단 아람을 떠난 야곱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위기는 무엇입니까? 6절은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라고 합니다. 야곱은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라반의 집에 머물러 있었으며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다고 하면서 너그러운 사랑을 베풀러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형 에서를 떠나 어떻게 살았는지 소식을 전하며 형의 재산에 관심이 없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종들이 들려준 소식은 형 에서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7절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라고 합니다. 에서는 사냥에 능한 자였기에 칼을 사용하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에서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사백 명과 함께 야곱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은 위기였습니다. 이에 야곱은 매우 두렵고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는 위기임을 직감하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엇에 짓눌린 듯한 고통과 좌절감을 느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으로 에서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냥 앉아서 형 에서에 의해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형 에서와 갈등을 해결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곱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습니까? 첫째,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13절은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라고 합니다. 야곱은 자신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종들을 보내 너그러운 은혜를 구했습니다. 형의 재산을 탐할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알렸습니다. 또한 함께한 동행자들과 짐승을 두 떼로 나누고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들을 먼저 보내고 야곱은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형 에서에게 줄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줄 예물은 히브리어 מִנחָה(민하)로 ‘선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사서 유익을 얻으려는 뇌물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 당시 예물은 그 사람에 대한 존경 혹은 복종의 태도를 나타내었습니다. 20절은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고 합니다. 야곱은 에서와의 갈등 관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예물을 통해 에서의 서운한 감정을 풀어 주고 얼굴을 마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와의 용서를 구하며 화해의 증거물로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야곱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암염소 이백과 숫염소가 이십과 암양 이백과 숫양 이십과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와 암소 사십과 황소 열과 암나귀 이십과 그 새끼 나귀가 열 마를 예물로 주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짐승들보다 형 에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갈등하고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이, 가정생활과 직장 생활이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혹시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인생의 위기가 되고 있습니까? 저절로 관계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계획과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겸손한 마음과 진정성 있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관계도 회복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야곱처럼 갈등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하고 인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신앙적인 방법입니다. 야곱은 두 떼로 나누어 공격을 받으면 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에서에게 줄 예물을 준비하여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매우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는 신앙적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1절과 12절은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언약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에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야곱에게 고향, 족속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언약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지팡이만 가지고 밧단 아람에 왔었는데 많은 짐승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자신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이에 하나님께 에서의 손에서 건져내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은혜를 베푸셔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신다는 언약을 지켜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축복하시는 하나님,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특히 야곱의 기도는 무엇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24절과 25절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고 합니다. 야곱은 아내 라헬과 레아와 여종 빌하와 실바와 종들과 짐승들을 인도하여 얍복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홀로 남아 있었을 때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그가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이 허벅지 관절을 쳐서 어긋나게 했습니다. 그 씨름은 무엇입니까? 야곱과 씨름을 한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 사건을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곱과 어떤 사람과의 씨름은 땅에 먼지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게 몸싸움한 것입니다. 호세아는 야곱과 어떤 사람과의 씨름을 간절한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12장 3절과 4절은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합니다. 야곱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형 에서와 다투었습니다. 성장해서는 하나님과 다투었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싸워 이겼으며 복을 달라고 울며 간구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눈물과 간절함이 있는 기도였습니다. 야곱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32장에서 형 에서가 야곱을 만나러 사백 명의 장정들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그가 두려움과 답답함을 느끼기 전까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았다고 야곱이 전혀 기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야곱이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한 것이 없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문제와 위기를 만났을 때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인간적으로 탁월한 지혜와 술수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야곱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믿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와 방법과 능력을 구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그는 자신의 지혜와 방법을 통해 문제와 위기를 해결했습니다. 계획하고 원하던 것을 얻었습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도 했습니다. 많은 자녀들도 낳았습니다. 많은 재물도 얻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은 매우 성실한 사람입니다. 성공에 대한 재주와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기에 신앙적인 방법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야곱에게 있었던 함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의 한계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관계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낙심하고 절망할 것인지? 아니면 신앙적인 방법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열두 해 동안 혈중을 앓던 여인은 치료할 돈도 모두 떨어지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 만지고 혈류 근원이 말랐습니다. 여인은 신앙의 방법을 통해 건강과 평안과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통한 방법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인간적인 방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신앙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위기 해결 방법을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와 위기를 해결하던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밤을 새워 간절히 기도한 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야곱에서 이스 라엘이 되었습니다. 속이는 자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방법을 바꾸면 위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위기의 상황과 환경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고 다른 사람이 변합니다. 그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문제와 위기 앞에서 두려워하며 답답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낙심하고 낙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원망하고 절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때로는 밤을 새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간절한 기도, 절박한 기도의 부르짖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갈등 관계가 풀어지고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문제와 위기가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화해와 행복이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