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믿고 전해야 할 복음이다 고린도전서 15:1-11 예화) 스탠퍼드 대학교의 설립 배경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는 세계 대학교 순위 2~3위를 다투는 미국의 명문 대학입니다. 그 대학의 출신은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 등이 있습니다. 스탠퍼드대학을 설립한 사람은 릴랜드 스탠퍼드와 아내 제인 스탠퍼드입니다. 릴랜드 스탠퍼드는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철도 건설자이며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들은 189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시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학교를 세우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 16세에 장티푸스를 앓다 죽게 되었습니다. 극도의 슬픔에 잠긴 스탠퍼드에게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아버지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셔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탠퍼드는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내 아들도 살아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을 모두 우리의 자녀 삼읍시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약 200억 원을 드려 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나의 재산은 10원짜리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스탠퍼드의 인생을 변화시킨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또한 부활에 참여한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변화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에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기대하며 사모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처럼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1절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 합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먼저 복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자신이 듣고 전한 것이며, 성도들이 받고 굳게 서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2절은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고 그것을 굳게 잡고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복음을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며 무익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부인하는 자는 그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반면에 복음을 진실히 믿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복음은 죄로 인해 사망 안에 있는 자에게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바울이 받고 전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3절과 4절은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죄의 권세를 깨트리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죄인을 위해 죽으셨으나,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때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날 것입니다. 악한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힌 자들이 놓임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면서 복음을 전할 결심과 계획을 했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복음을 전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우리의 가족이, 친구가, 직장 동료가, 이웃이 구원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믿어야 할 복음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허구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던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도적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시체를 훔쳐 갔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사설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절설이라고도 합니다. 셋째, 영혼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넷째, 환상설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제자들이 너무 보고 싶어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헛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주장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했습니까? 5절에서 8절은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통해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 보이셨습니까? 첫째, 게바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게바 즉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항상 함께 했으며 죽음심과 부활에 대해 들었던 사람으로 제자들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열두 제자입니다. 그 당시 가롯 유다는 죽었으며 아직 맛디아는 제자로 선택되지 않았기에 실제로는 열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열두 제자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 그룹을 의미합니다. 셋째, 500여 형제들입니다. 소수의 몇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 중에는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는 그 당시 생존해 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넷째,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에게 보이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전에는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난 후에 예수님을 믿었으며,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넷째, 모든 사도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던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바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본 후에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전도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교만한 큰 자인 사울은 겸손한 작은 자인 바울로 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던 제자들만 아니라, 자신을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 나아가 자신을 핍박하던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심으로 부활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 지내어 그 몸이 썩은 분이 아닙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무덤 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전해야 할 복음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에 자신이 어떠한 존재가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합니다. 바울이 구원을 받고 사도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자는 더 많이 수고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은 부활 신앙에 있습니다. 부활 신앙이 있을 때 더 많은 수고와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1절은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주를 위한 헌신만 아니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도 부활 신앙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은 우리가 전도자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부활의 복음을 들려주었기에 믿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화) 부활절의 첫 복음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습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을 듣고 정식적으로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부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 신앙으로 세상과 죄악을 이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며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