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한 달 마태복음 17:22-23 저에게는 서울시 영등포에서 목회를 하는 막내 동생이 있습니다. 그 동생이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자주 전화해서 안부를 묻기도 하며, 토요일이 되면 그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번 주일에 예배 인도하는지 주보를 봅니다. 주일 저녁에는 설교를 잘했는지 영상을 확인해 봅니다.
지난 2023년 9월에 동생이 목회하는 교회 주보를 보는데, 설교 제목이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동생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이런 설교하기로 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어떤 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다행히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케리 슉과 크리스 슉이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이라는 책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 책은 제가 몇 년 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것이었습니다. 지난 2월 14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카톡으로 보낸 드린 성경 묵상과 기도에 대한 자료를 읽으며 보내셨으면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5번에 걸쳐 이 책의 내용을 참고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2024년의 마지막 12월에 기도하고 준비해서 모든 성도들이 내 생의 마지막 한 달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 주일 주보의 칼럼에 그 책에 대한 소개를 했으니 구입을 해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종이책으로도 구입할 수 있으며, E-book으로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좀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캠패인을 하는 것입니다.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의 캠페인을 미리 경험한 미국 달라스의 빛내리 교회의 도움을 받아 자료도 준비했습니다. 정찬수 담임목사님에게 혹시 자료를 공유해 주실 수 있는지 메일을 보냈습니다. 흔쾌히 허락하시고 교회에서 진행했던 모든 자료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자료를 포함해서 2024년의 마지막 한 달을 통해 우리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는 놀라운 은혜와 역사가 충만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생에 거룩한 변화와 성장이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에 대해 나누며 유한한 인간의 죽음에 관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죽음은 매우 두렵고 불편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중요한 것입니다. 죽음의 핵심은 단절과 분리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세 가지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의 죽음으로 육체와 영혼의 분리입니다.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영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관계, 혹은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죽음으로 천국과 지옥으로의 분리와 단절입니다. 육체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불편함일 수 있습니다. 예화) 묘비 어떤 사람이 묘비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묘비의 글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다음 묘비에 눈길이 갔습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그 글을 읽으면서 단순히 재미로 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바로잡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번째 묘비를 읽었습니다.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것이니 준비를 하시오.” 아마 그 사람은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몸이 불편해서 병원을 방문해서 검사를 받았는데, 30일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한달 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케리와 크리스는 약 10년 동안 이 질문과 대답에 대한 것을 책으로 쓰려고 해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열정적으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에 자기 죽음을 알고 준비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던 분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위대한 사랑과 사명을 사셨던 분입니다. 이에 33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은 유한한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위대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을 아셨지만 어떻게 사셨습니까? 아니 죽음을 아셨기에 어떻게 사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야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은 ‘나를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대답과 고백에 만족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6장 21절은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들은 베드로는 아주 강하게 만류하며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들으시고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6장 23절은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썩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죽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순교자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믿음을 지켰습니다. 육체의 쾌락을 즐기며 편리하며,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멀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버리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분만 아닙니다. 우리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더 예배하고 기도하고, 더 교회를 섬기고 헌신하며, 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악한 사람들에 의헤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당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실 날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장 1절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을 무엇을 통해 나타내셨습니까? 요한복음 13장 5절은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라고 합니다. 예수님인 친히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으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 자리에 누가 있었습니까?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하고 있던 가롯 유다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면 부인할 베드로도 있었으며, 요한을 제외한 도망할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행할 일을 알고 있으셨지만,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죽음 앞에 둔 사람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중에 가장 많은 단어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였습니다. 특히 가장 미안하고 후회되는 것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과 사랑하는 가족들인데 정작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기대가 켜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한 것이 우리의 삶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앞에 두며 더 미안하고 후회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했으면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신앙과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명을 위탁하셨습니까? 누가복음 24장 46절에서 48절은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한 죄 사함과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으로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전할 것을 위탁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복음 전할 것을 위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계속해서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 승천하시며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부탁하신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이었으며, 제자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도행전 20장 24절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이 에수님께 받은 사명으로 믿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위해 생명까지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걸고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감당했으면 합니다. 그 사명을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맡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교회를 세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후회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두 번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일생(一生)이라고 합니다. 한번 태어나 한번 죽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예수님을 통해 발견하고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에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35일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내 생의 마지막 한 달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품고 이루었으면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했으면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감당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설 때 부끄럽지 않고,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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