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일예배

제목기가 막힐 일이 일어났습니다(스 9:1-6)2024-02-23 18:58
작성자


기가 막힐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 9:1-15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 세 당시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2차 바벨론 포로 귀환(B.C.457)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느혜미야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제3차 포로 귀환(B.C.444) 이후에도 유다 백성들의 율법 교육과 개혁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스룹바벨은 성전 재건을 했으며,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 영적 부흥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에스라가 바사에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2절은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 중에 우상을 섬기는 족속들과 민족들의 자녀들과 결혼시키는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죄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혈연과 신앙을 혼잡하게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일을 앞장서서 한 사람이 종교 지도자들과 행정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성과 신앙의 순전함을 지키도록 앞장서야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오히려 죄를 앞장서서 죄를 범했습니다.

 

예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프랑스의 작가 겸 정치가인, 레비 공작 피에르 가스통 마르크(Pierre Marc Gaston de Lévis)격률과 교훈이라는 책에서 처음 쓴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혹은 책임 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권세와 축복을 받은 자들에게는 더 많은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생활과 신앙생활의 태도와 행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 생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직분을 받은 성도들은 더 많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축복을 저버리고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죄를 범하는 일에 앞장서는 자들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앞장서서 선을 행하며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가정과 교회에서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죄악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기가 막혀 앉아 있었습니다.

3절과 4절은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라고 합니다. 그는 속옷과 겉옷을 찢었으며 수염을 뜯었습니다. 기가 막혀 주저앉았습니다. 에스라의 행동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모여들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도 없으며 일어나지도 않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살면서 기가 막힐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가 막힐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기가 막힐 일로 인해 사람들을 주저앉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일으키며 세우며 용기를 주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염치가 없어도 기도했습니다. 6절은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기가 막혀 주저앉아 있던 에스라는 저녁때에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어났습니다.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얼굴을 들기가 너무나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가 커 키를 넘어 하늘까지 닿았다고 합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기도할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에스라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부모에게 무엇을 요구할만한 염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부모님과 자식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가 염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탁하고 손을 벌리게 됩니다. 우리가 때로는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는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습니다. 얼굴을 들고 기도할 염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기도에 회복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하기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며 우리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기가 막힐 일이 일어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첫째, 악한 습관 때문입니다.

7절은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인해 전쟁에서 패하고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고난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죄를 범하는 악한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악한 습관,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에 반복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 습관을 버리는 것이 위대한 결단이며 용기입니다. 혹시 반복해서 죄를 범하고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습관이 있습니까? 그것을 버리고 극복함으로 형통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8절은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죄를 범했지만 완전히 멸망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방 나라에서 종으로 살지만 소생하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아는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10절은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더럽고 가증한 일, 즉 우상을 숭배하는 일로 가득 채웠습니다. 축복의 약속을 하나님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믿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히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한 사람도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할 염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을 받을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02절은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고 합니다. 스가냐가 에스라를 찾아와 이스라엘 비록 죄를 범했으나 아직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 중에도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첫째, 협력입니다.

104절은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고 합니다. 에스라에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 많은 백성이 함께 통곡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남녀는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에스라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이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함께 도울 것이니 용기를 가지고 행하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겸손합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야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함께 생각과 마음과 힘을 모을 때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결단입니다.

105절은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고 합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에스라의 말대로 백성들이 행하기로 맹세를 했습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방 사람들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자식을 낳은 백성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큰 결단하고 맹세하며 순종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절망이지만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모든 사람이 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15절은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고 합니다.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이방 결혼을 청산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또한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지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힘을 모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 했습니까?

1011절과 12절은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에스라는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방 여인과의 결혼생활을 끊으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에스라의 말대로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자녀를 낳은 사람들은 자녀들은 남기고 여인들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음은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을 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큰 슬픔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반면에 의와 순종은 평안과 회복을 경험할 수 있게 합니다.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가 막힐 일, 즉 하나님이 가증이 여기는 일을 행함으로 낙심하고 절망하며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언제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 앞에 회개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결단하고 회복했을 때 기가 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기가 막힐 일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기가 막힌 일을 경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