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찾고 생각하고 사모하라 히브리서 11:13-16 저는 2003년 12월 4일에 제주에 들어와 만 20년을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주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아쉬운 것은 어머님과 가족들을 자주 뵙지 못하고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고향을 방문한 것은 2017년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고향 생활에 대한 추억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고향 소식을 알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합니다. 저와 아내가 다니던 상몽 교회는 전에 있던 곳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옮겨 건축했습니다. 전에 교회가 있던 곳은 팔려 사택이 있던 자리에 이런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그 건물을 팔기 위해 매물로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다니며 추억이 있는 교회를 보면서 그리움이 더해졌습니다. 고향(故鄕)은 어던 곳입니까? 태어나 자라난 곳이며,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어머니의 품과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고향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본향입니다. 개역 개정에는 본향이라는 단어가 6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에 절반인 3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 단어가 한글에는 모두 본향이지만, 헬라어는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4절의 본향은 πατρίς(파트리스)로 아버지가 있는 고향입니다. 15절의 본향은 ἐκεῖνος(에케이노스)로 특정한 장소를 나타내는 그곳입니다. 16절의 본향은 κρείττων(크레잇손)으로 탁월함을 의미하는 더 좋은 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본향은 본래의 고향입니다. 영적 의미에서 본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그곳이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더 좋은 곳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고 합니다. 이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간 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 소망은 무엇에 대한 것이었습니까? 바로 본향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본향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위기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와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 핵심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천국에 대한 신앙의 약화와 상실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생활이 편리하고 평안하면서 놓치는 것이 천국에 대한 신앙입니다. 한국 교회사에 신앙이 가장 간절하고 뜨거웠을 때는 일제시대와 6.25 전쟁 때였습니다. 그때 많은 순교자가 나왔으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했습니다. 그 후에 경제 성장과 함께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신앙생활이 간절하지도 절박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대한 메시지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성도들과 교회가 영적 회복을 경험하는 데 필요한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일 것입니다. 영원한 본향에 대한 신앙입니다. 우리 함께 본향에 대해 은혜를 나누며 천국 신앙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지시하신 땅을 향해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라는 너무 늙어 아기를 낳을 수 없었으나 믿음으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었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인정받았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며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진정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본향에 대한 믿음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본향에 대해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그들은 본향을 찾았습니다. 13절과 14절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야곱은 모두 가나안 땅과 그 후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었으나 약속의 성취는 보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실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었으나, 근본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된 구원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향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누구로 살았습니까? 그들은 외국인과 나그네로 본향을 찾는 자로 살았습니다. 외국인은 그 땅에 살고 있으나 그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그네는 그 땅에 살고는 있으나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은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천국 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자가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두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 본향을 찾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를 애쓰며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영원한 본향 천국을 소망하며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들은 본향을 생각했습니다. 15절은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였으며, 야곱의 고향은 벧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살면서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 살면서 가나안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자신들의 영원한 본향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곳이 영원한 본향으로 생각했다면 돌아갈 기회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이 본향이 아니었기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원한 본향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본향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골로새서 3장 1절과 2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죄와 사망에서 살리심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본향 천국을 기억하고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들은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16절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본향을 찾으며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사모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ὀρέγομαι(오레고마이)는 ‘열렬히 갈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하늘나라, 즉 천국을 갈망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본향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그 본향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 성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21장 2절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합니다. 그 성은 거룩한 성, 즉 새 예루살렘입니다. 그 성에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기에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없고, 울부짖음도 없고,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 즉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죽음과 슬픔과 울부짖음과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천국을 갈망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화) 고향에 한 기부 지난 2023년 6월에 ‘고향 주민 등에 최대 1억씩...총 1400억 사비 기부’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 사람들에게 1억 원부터 차등을 두어 280여 세대에 현금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킨 사람들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분의 마음에는 항상 고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고향을 잊지 못하기에 기부를 한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 천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까? 본향을 찾는 사람입니다. 본향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본향을 찾고 생각하고 사모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천국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거룩한 헌신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영원한 본향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