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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성장(2) : 부흥을 경험하는 삶(시 51:9-13)2024-01-2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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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3) : 부흥을 경험하는 삶

시편 51:9-13

 

예화) 한국교회의 부흥

한국교회는 세 번에 걸쳐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첫째는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것으로 강력한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둘째는 6.25 전쟁 직후 피난 시절 남한과 북한에서 피난한 기독교인들이 부산에 모여 민족과 교회와 개인의 죄를 회개하며 통곡하며 부르짖어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셋째는 한국교회가 1970년에서 1980년대 일 년에 12.5%까지 성장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흥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개인의 영적 부흥을 잃어버렸으며, 교회도 부흥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부흥에 대한 열정도 소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슬픈 것은 부흥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성장은 부흥의 방법이며 결과입니다. 부흥이 있는 곳에 성장이 있습니다. 또한 성장이 있는 곳에 부흥이 있습니다.

 

다윗은 부흥에서 침체로, 침체에서 부흥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51편은 영적 침체에서 부흥을 위한 다윗의 고백에 관한 것입니다.

 

시편 51편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표제어를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예언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무엘하 121절에서 23절을 배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들이 전쟁에 출전할 때가 되었지만 다윗은 요압과 부하들만 암몬과의 전쟁을 위해 보내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가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게 하고 동침하여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다윗의 신실한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그는 밧세바와의 부적절한 행동을 은폐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죽게 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남편 우리아의 장례를 마치자 데려와 왕궁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행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는 것을 비유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또한 부적절한 관계로 태어난 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은 중심을 하나님께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윗은 왕으로서 게으르고 나태했으며 안일했습니다. 밧세바를 보고 음욕을 품었으며 간음했습니다. 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죽게 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윗이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오늘은 다윗이 어떻게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는지? 부흥을 경험한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나누었으면 합니다. 다시 부흥을 경험하는 성도들과 교회에 대해 기대하며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부흥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흥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 부흥이라는 단어는 한번 나오고 있습니다. 하박국 32절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바른 시간 안에 부흥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합니다. 부흥은 히브리어 חָיָה(하야)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부흥과 같은 의미가 있는 단어는 소생입니다. 시편 233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소생은 히브리어 שׁוּב(슈브)거의 죽어가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영적 부흥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영적 부흥에는 어떤 일이 있습니까?

 

첫째, 부흥은 회개입니다.

9절은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죄악을 말갛게 씻어 주소서!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우슬초로 정결하게 하소서! 죄를 씻어 주소서! 죄에서 돌이켜 주소서!”라고 합니다. 그러면 깨끗하게 될 것이며 눈보다 더 희게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죄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을 교사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3절은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뼈에 사무칠 만큼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인해 죄 사함을 받고자 했습니다. 이런 고백과 간구는 다윗의 회개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부흥의 시작은 회개로부터 일어납니다.

 

부흥은 회개입니다.우리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실패할 수 있습니다.넘어질 수 있습니다.실수할 수 있습니다.악한 사탄은 우리의 죄와 실패를 참소하며 낙심하고 절망하게 합니다.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없게 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7절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합니다.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겸손하게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마음입니다.그것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우리는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얻습니다.회개를 통해 죄에 대한 민감성이 돌아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토마스A.캠피스는죄를 범한 후에 지나친 변명을 하는 것보다 진실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낫다.”라고 했습니다.우리에게 회개의 눈물이 있었으면 합니다.진실한 회개를 통해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흥은 회심입니다.

10절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은 죄를 회개하며 무엇을 간구하고 있습니까?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합니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합니다. 정한 마음은 정한 마음은 죄의 욕구를 물리칠 수 있는 변화된 마음입니다. 정직한 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심령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때로는 죄를 범하기도 하고, 인생을 수렁과 나락으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부흥은 마음의 거룩한 변화에 있습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해 먹는 것과 정결의 규례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518절과 19절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타락 후에 왜곡되고 변질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욕망에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 육체의 일을 추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전도서 31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특히 인간의 마음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의 마음은 선한 것이고, 영적이었습니다. 바로 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그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순수하고 깨끗하며, 정직하고 올바른 것으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한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부흥은 회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완악한 마음이 온유한 마음으로, 교만한 마음이 겸손한 마음으로, 원망하던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러운 마음이 청결한 마음으로, 좁은 마음이 넓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변화되어 죄의 유혹을 극복하고 선을 행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흥은 회복입니다.

12절은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져 죄를 범한 다윗은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해 죄를 범한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부흥은 구원의 확신과 감격의 회복에 있습니다.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을 때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이 회복될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12b절과 13절은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자원하는 마음은 헌신의 출발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헌신할 때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영적 부흥은 우리를 억지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게 합니다.

 

다윗은 무엇을 헌신하기를 원했습니까?

그는 자신처럼 죄를 범하여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법과 길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과 어떻게 살아야 할 길을 제시하기를 원했습니다. 부흥은 회복입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의 회복입니다. 헌신과 사명의 회복입니다. 혹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고 기쁨을 잃어버리셨습니까? 억지로 헌신하거나 헌신의 자리를 떠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언제 영적 부흥이 일어납니까? 누가 영적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부흥은 영적 갈증과 배고픔을 절실하게 느끼며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시작합니다. 부흥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적 성장은 부흥을 경험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회개와 회심과 회복을 통해 거룩한 부흥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 부흥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