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밭을 보면 추수할 곡식이 보인다 요한복음 4:28-38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으나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혼혈 인종과 종교가 혼잡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과 같이 여기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셨으며, 복음 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으로 언급한 자도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나병 환자를 치유하실 때 찾아와서 감사한 자도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신 것도 사마리아였습니다. 스데반 순교 후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해 기쁨이 충만했던 곳도 사마리아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온 곳도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들어가셔서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복음을 전해 구원을 받게 하신 것에 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 여인을 구원하는 것을 통해 전도의 대상이 누구인가? 전도의 방법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전도의 대상으로서 여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 여인이 음란한 여인이었습니까? 그렇다면 비난과 정죄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까? 그렇다면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있어 그 음란하든지, 아니면 버림받은 여인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이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예수님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해 구원하셨습니까? 첫째는 공감과 이해입니다. 예수님과 여인에게는 같은 생각과 필요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대화와 관계의 전환입니다. 예수님은 물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에서 영원한 생수로 대화를 전환하셨습니다. 여인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영적인 관계로 전환을 시키셨습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입니다. 복음은 관계를 통해 효율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여인에게 복음을 제시하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물을 주시는 분이 자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사람들에게 간증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믿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여인과 대화를 하실 때 제자들이 돌아와서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에 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매우 다른 차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와 예수님과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습니까? 첫째, 관심입니다. 요한복음 4장 27절은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돌아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왜 그 여인과 말씀하시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제자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그 사람의 영적인 상황이나 상태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영적 상황이나 상태를 분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의 관심은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4장 33절과 34절은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두 먹는 양식에 관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양식에 대해 전혀 다른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먹고 배가 부르게 하는 양식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그 양식을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는 양식은 사명입니다.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있은 사명은 존재의 의미와 목적과 능력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양식입니다.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에 관심을 가질 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관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시간에 대한 관점이 달랐습니다. 35절은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지금 눈을 들어 밭을 보면 추수할 때라는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시간을 보면 복음을 전할 다음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추수할 때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는 다르게 복음의 긴급성을 가지고 바라보셨습니다. 우리는 VIP즉 전도 대상자를 작정하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이번에 하지 못하면 다음에 할 수 있다고 여유 있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복음을 들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는 기쁨에 대한 관점이 달랐습니다. 36절은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씨를 뿌리면 그 열매를 반드시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실패와 슬픔을 느낍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지 못해도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복음을 전하고 내가 그 열매를 거둘 때 기쁨이 있다고,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은 예수님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도 즐거움이며. 복음의 열매를 거두는 것도 기쁨이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도, 영적 열매를 거두는 자도 모두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 열매를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복음의 씨를 뿌린 것을 우리가 열매를 거두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37절과 38절은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지금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고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실패 없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결실을 거둘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9장 36절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셨을 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탈진해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의 가장 기본은 긍휼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관점은 긍휼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때가 되었으나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마태복음 9장 37절과 38절은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추수할 곡식은 많지만 일꾼이 부족하다고 하십니다. 이에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사람이 적습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에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우리가 일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5절은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의 환경과 사람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할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구원 받을 자를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사람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보셨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관점을 가지고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복음의 씨를 뿌렸으면 합니다. 기쁨으로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 눈을 들어 복음을 전할 밭을 보고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