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 사사기 13:1-14 예화) 쌀 미(米)자의 교훈 이 한자는 쌀미(米)자입니다. 이 쌀 미자가 주는 교훈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쌀 한 알을 만들기 위해 88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십자(十)를 중심으로 8(八)자가 위 아래로 들어 있습니다. ‘나이가 먹어 할 일이 없으면 농사나 지으면 되지’라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농사 중에 가장 어려운 농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자식 농사입니다. 자식을 낳고 온전한 사람으로 키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자식을 키우며 가장 낙심과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어려운 것은 좋은 부모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더 어려운 것은 자식을 하나님의 신실하고 거룩한 자녀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내용은 이스라엘의 사사로 사역을 했던 삼손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를 양육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삼손의 부모는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소서!’라고 합니다. 그것은 부모로 살아가는 우리의 고백이며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함으로 블레셋의 손에서 40년 동안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소라 성에 사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 여인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5절은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를 나실 인으로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실 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자였습니다. 성경에는 요셉과 사무엘이 나실 인으로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그들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거룩한 성도는 모두 영적인 나실 인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거룩한 나실 인으로 양육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삼손을 낳아 어떤 사람으로 양육하라고 합니까? 그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 했습니까? 첫째,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아야 했습니다. 5절은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 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머리는 권위에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태어날 아이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후에 삼손이 머리에 삭도를 대었을 때 무기력한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말씀의 권위에 대한 불순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를 권위를 인정하는 자로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비롯하여 적절한 권위를 인정하는 자로 성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양육되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7절은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 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라고 합니다. 이는 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할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가 낳을 아이가 지켜야할 나실 인의 규례였습니다. 그들이 금해야 할 것은 포도주와 독주였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실제로 마시지 말라는 것과 함께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쾌락과 감각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에 빠져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재미만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자로 양육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인생을 즐길까? 를 생각하는 것보다, 어떻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까? 를 생했으면 합니다. 육체적인 쾌락과 만족만을 추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성령 안에서 절제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시체를 만지지 말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민수기 6장 6절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라고 합니다. 나실 인은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죄의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죄의 무서운 결과와 심판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리 안에 살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과 용기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노아 부부는 최선을 다해 삼손을 나실 인으로 양육했습니다. 그들은 삼손을 나실 인으로 양육하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기도했습니다. 8절은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라고 합니다. 마노아는 아내로부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말을 듣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자를 다시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과 경험만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 양육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낙심하고 절망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와 소망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기도에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우리의 생각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 양육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12절은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라고 합니다. 마노아는 기도한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나타났을 때 말씀대로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양육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식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삼손은 부모의 기도와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성장을 했습니까? 24절과 25절은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고 합니다. 삼손은 부모의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잘 성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으며 성령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블레셋을 구원하시는데 삼손을 사용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부모의 기대를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블레셋 여인을 사랑한 것입니다. 14장 3절은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고 합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여 아내로 맞이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할례 받지 않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에 의해 이용을 당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비참한 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중요시 하지 않고 육체의 욕망과 쾌락을 다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나실 인의 규례를 어긴 것과 같았습니다. 둘째, 사자의 시체를 만진 것입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데리러 가다가 사자가 소리를 지르지 찢어 죽였습니다. 후에 또 여인을 만나러 가다가 사자의 시체에 꿀이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14장 9절은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고 합니다. 그는 사자의 시체에 손을 대고 꿀을 먹었으며 부모에게도 드렸습니다. 이는 죽은 시체에 손을 대지 말고 가까이 하지 말라는 나실 인의 규례를 어긴 것입니다. 셋째, 머리에 삭도를 대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삼손을 제거하기 위해 들릴라라는 여인을 보내 유혹을 하게 했습니다. 그 여인의 유혹을 받은 삼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장 19절은‘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고 합니다. 들릴라는 삼손의 힘이 머리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무릎에 자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머리털 일곱을 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모든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나실 인의 규례를 어긴 것이었습니다. 삼손의 부모는 최선을 다해 나실 인으로 양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한 삼손은 나실 인의 규레를 어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손에 대한 마노아 부부의 양육은 실패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삼손이 하나님을 떠난 자로 생을 마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는 두 눈이 뽑히고 청동 사슬에 묶였으며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다곤 신전의 기둥을 무너지게 만들어 3,000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수는 삼손이 살아 있었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많았습니다. 이에 삼손은 사사로서의 삶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삼손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마노아 부부에게 있어 삼손의 양육은 실패한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실 인으로의 규례를 어기고 블레셋 사람에 의해 비참한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손이 중간에 신앙과 인생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손이 마지막에 다곤 신전을 무너지게 만들기까지 마노아 부부가 살아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하는 아들 삼손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삼손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면서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식에 대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와 소망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식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식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으면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식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때로는 지금 하나님의 신실한 자로 살지 못하고 있지만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부모보다 더 하나님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