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베드로전서 1:22-2:3 예화) 말씀의 능력 위대한 설교자 D L 무디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거듭난 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 것을 서약하고 생활했는데도 늘 넘어졌습니다. 무디는 산으로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산을 내려와 한 달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부흥 목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부흥집회를 쫓아다니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나는 화인 맞은 양심인가보다, 성경 속 비유에 나타나는 길가의 마음처럼 씨가 자라지 못하는 마음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혐오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무디는 전 미국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승리케 하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혹시 세상에서 쓰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귀의 유혹이 자주 넘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신앙이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말씀의 은혜가 회복되고, 영적으로 충만해 질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대한 거룩한 열망이 풍성해 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며, 모든 행실에 거룩하며, 세상에서 거룩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갈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영혼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 생명입니다. 그는 특히 말씀을 생명과 관련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인해 어떤 일이 있습니까? 첫째, 생명입니다. 예수님께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중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를 향해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과 5절은‘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으며,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 은 ‘중생’, 즉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가 새 생명을 얻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역사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거듭난다고 합니까? 23절은‘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입니다. 그 씨는 무엇입니까? 곧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25절은‘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거듭남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으로서의 구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에 있습니다. 그 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얻은 것, 즉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전도자들이 전한 복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구원 받은 자들이 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장입니다. 베드로는 2장 1절에서 ‘그러므로’ 라고 말함으로 거듭남으로 생명을 얻었으면, 즉 구원을 받았으면 그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우리는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 그것은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것입니다. 특히 어린 아이의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잘 싸는 변입니다. 만약 변 전체가 붉으면 세균성 장염을, 흰색이면 위장염을, 검은색이면 장출혈을 의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건강한 변은 황색변으로 담즙이 간장에서 나와 담낭, 십이지장을 거치면서 황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변이 장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건강에 이상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숙변을 제거하는 약을 먹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잘 배출할 수 있어야 합니까? 1절은‘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5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악독입니다. 이는 악하고 독살스런 생각과 의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악독이 상달되었다고 하셨으며,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향해 악독이 가득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동기와 목적이 악한 것은 죄입니다. ② 기만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모든 종류의 거짓입니다. 잠언 20장 17절은‘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속여 부정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것으로 인해 결국 비참하고 불행해 질 수 있습니다. ③ 외식입니다. 이는 속과 겉이 다른 것으로 위선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5절은‘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잘 보이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④ 시기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여 투기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3절은‘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합니다. 시기는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이며, 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⑤ 비방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악한 말입니다. 사람들은 둘이 모이면 두 가지 말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이나 자식 자랑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 비방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은‘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라고 합니다. 비방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입술의 쓴 열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되어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악입니다. 혹시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 때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악한 것을 버리면 선한 것으로 채우십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깨끗하지 못하게 만들며,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영적인 양식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2절은‘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갓난아기에게 필요한 젖과 같습니다. 젖는 아기에게 있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적인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 말씀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19장 24절은‘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그릇에 음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릇에 손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을 입에 넣기를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음식을 먹지 못해 건강을 잃어버리거나 굶어 죽게 됩니다. 이것을 영적인 양식으로서의 말씀과 관련하면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성경도 몇 권씩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습니다. 성경 공부할 기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설교도 집중해서 듣지 않습니다. 성경공부는 싫어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삐쩍 말라 있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역동적으로 할 기운도 없습니다. 혹시 그것이 여러분은 상태는 아닙니까?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22절은‘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영원한 씨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과 진리를 본문에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영혼이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영혼의 거울이기에 무엇이 죄인지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깨끗한 자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사랑과 미움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데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며,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많아진다는 것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생명을 얻고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3절은‘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맛을 경험했다면 버릴 것을 버리고,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며 가장 마음이 아플 때가 언제 일까요? 건강하지 않을 때입니다. 성장하지 않는 것을 볼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언제 아플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을 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주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에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양식을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을 통해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고,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