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 베드로전서 3:8-12 예화) 성공은 인간관계에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인포시크 등 4개의 IT업체를 성공시킨 성공한 벤처기업가인 스티븐 케이시는 “내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며 나는 MIT 공대에서 최고의 공학기술을 배웠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고 했습니다. 그는 IT사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요즘 나에게 공학기술과 인간관계 기술 가운데 한 가지만을 택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인간관계 기술을 선택할 것이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연구소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 중 15%는 기술적 지식에 의한 것이며 85%는 인간관계 즉,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능력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85%의 사람들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 즉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받아들여서 사람들과 함께 원만하게 지내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에서 성공한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교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2장 13절에서 3장 7절에서 사회와 직장과 가정생활에 대해 교훈을 했습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위정자들과의 관계를(2:13-17), 직장생활에서는 상사와의 관계를(2:18-19), 가정생활에서는 배우자와의 관계(3:1-7)에 대한 것입니다. 이어서 교회생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3:8-12). 오늘은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관계, 즉 하나님 중심의 인간관계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관계 속에서 생활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앙중심의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그것은 마음과 반응에 있다고 합니다. 첫째, 마음입니다. 8절은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라고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한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고 섬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성향을 가진 성도들이 같은 마음, 한마음을 품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가 돨 수 있습니다. 함께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고, 함께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마음을 무엇입니까?
첫째로, 동정하는 마음입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라고 합니다. 동정은 함께 고통을 느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5절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과 부족함을 이해하시고 함께 아파하십니다. 바울은 동정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12장 15절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합니다. 다른 성도들의 즐거움과 슬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 동정입니다. 그 마음이 있을 때 연약함이나 실수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연약한 성도들에게 좀 더 많은 힘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형제를 사랑하며’ 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사랑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7절은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뎌 냅니다’ 라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요한복음 15장 9절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큰 사랑을, 더 풍성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긍휼의 마음입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불쌍히 여기며 ’ 라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은 긍휼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은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을 위해 죽으신 것은 긍휼의 마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것도, 그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긍휼의 마음이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도 긍휼의 마음이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겸손하며’ 라고 합니다. 우리가 동정과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떤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겸손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습니다. 실수와 실패를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연약한 사람을 섬기기보다는 책망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며 불순종과 불경건함 삶을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오면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이 있을 때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를 베푸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동정과 사랑과 긍휼과 겸손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고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반응입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나쁜 일도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상처 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신앙적인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신앙적인 반응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9절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상처를 입었다고 상처를 주지 말고, 욕을 먹었다고 욕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한 사람들 축복하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욕을 하는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그것은 축복받는 인생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삶을 살 때 축복 받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축복하는 사람이 축복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혀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10절은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라고 합니다. 나를 욕하는 사람 모함하는 사람에게 욕을 하고 모욕하고 싶은 것이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혀를 금해 악한 말과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혀를 절제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에베소서 4장 29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더러운 말은 어떠한 것도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도들을 세워주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관계를 깨트리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악을 떠나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11절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고 합니다. 악을 떠나야 합니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화평을 원하고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갈등을 하고 화평을 깨트리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평화를 깨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악을 떠나지 않으면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해야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평을 이루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중심, 하나님 중심의 인간관계를 위해 마음과 반응을 언급했습니다. 그런 인간관계가 주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런 관계가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12절은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좋은 관계를 갖고 화평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인간관계가 막히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막힙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멀리하십니다. 그들을 대적하십니다. 혹시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손상되어 있지 않은지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중심의 성숙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동정과 사랑과 긍휼과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게도 신앙적인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하는 것입니다. 혀를 절제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며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축복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영적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성숙한 인간관계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신앙생활, 행복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그런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