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시편 100:1-5 예화) 감사는 생활방식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합니다. 이 구절을 유진 피터슨 목사는 메시지 성경에서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생활방식입니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드러나는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감사에 있습니다. 영국의 찰스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더 풍성한 복을 받는 길입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하면 환경과 상황과 소유를 초월한 감사가 있습니다. 맥추감사절에 우리에게 감사가 회복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감사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입니다. 찬양의 시입니다. 이 시에는 슬픔이나 원망이 한 마디로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만 있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도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가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 즐거이 외치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감사의 예배, 감사의 찬양에 대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옛날에는 아무나 왕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 앞에 나아갈 때도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왕 앞에서 나갈 때에도 뒤로돌아 나가지 못했습니다. 얼굴을 숙이고 뒷걸음을 쳐서 조심스럽게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히브리서 10장 22절은‘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맑은 물로 몸이 씻겨 졌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과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축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을 은혜요 축복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2절은‘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와 찬송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예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섬김은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향하여 기쁨이나 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노래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와 찬송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생활과 찬송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는지, 아니면 멀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하고 찬송할 때 하나님 앞에 있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배와 찬송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로 인해 구원 받은 기쁨과 감격으로 갖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송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배와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아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3절은‘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예배하는가? 누구에게 찬송하는가? 하는 것은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언급함으로 예배와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창조주로서 하나님과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4장 8절은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를 가장 잘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를 가장 잘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예배이며, 노래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주인이시며 우리는 그의 소유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이사야 43장 1절은‘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불러 그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고 아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왕이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시편 29편 11절은‘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왕이신 하나님께서 백성인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왕의 책임은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은 왕이신 하나님을 향한 백성으로서의 헌신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시편 23편 1절은‘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목자이시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물가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의로운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방황하고 유리하다가 짐승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와 찬양을 통해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찬송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을 통해 피조물임을, 소유임을, 백성임을, 양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해야 합니까? 5절은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배경으로 어떻게 예배하고 찬송해야 할 것인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함입니다. 감사함으로 성전 문에 들어가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찬송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성전과 궁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모든 것은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함으로, 헌금을 할 때도 감사함으로, 식사를 준비할 때도 감사함으로, 청소를 할 때도 감사함으로, 차량을 운행할 때도 감사함으로, 학생을 가르칠 때에도 감사함으로, 찬양을 할 때도 감사함으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화) 최후의 한 마디 한 사람이 대학병원의 수술실에서 혀(舌)의 암 때문에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취 주사를 손에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은 없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글로 쓸 수는 있겠지만 혀를 사용하는 언어는 이것이 최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심각했습니다. 만일 내가 이 환자라면, 만일 나에게 한 마디 언어 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떤 말을 할까? 누구의 이름을 부를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침묵과 긴장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두 줄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환자의 입이 움직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입을 주목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그 사람은 감사라는 말을 세 번 반복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진 성도로 가장 많이 해야 하는 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말, 가장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감사’입니다. 어떠한 환경과 상황 아래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극단의 상황이 닥친 가운데서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했으면 합니다. 감사함으로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께 표현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의 예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있는 가정생활, 감사가 있는 교회생활, 감사가 있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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