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베드로전서 2:4-10 예화) 주일학교 현황에 대한 자료 지난 2017년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회가 속한 총회 교육진흥원에서 교회교육에 대한 전수조사를 했습니다. 총회교육진흥원은 교단 산하 2000개 교회의 주일학교 현황을 발표했는데, 주일학교가 있는 교회는 71.1%이며, 없는 교회는 28.9%라고 했습니다. 통계에는 흥미로운 자료도 있습니다.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인데요. 담임목사(126명)의 절반 가까이가 모태 신앙이었습니다(43.7%). 1세~9세는 19.8%였으며, 10대는 22.2%, 20대는 13.5%였습니다. 30세 이상은 0.8%에 불과했습니다. 주일학교 1842명의 교사 중 39.3%가 모태신앙입니다. 1세~9세는 14.7%, 10대는 18.6%, 20대는 14.1%, 30대는 8.8%, 40세 이후는 3.9%였습니다. 평신도는 어떨까요? 1341명 중 모태 신앙은 33.3%였습니다. 1세~9세 15.7%, 10대 21.1%, 20대 12.9%, 30대 12.0%, 40세 이후 4.2%였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교회 구성원 절대다수인 79.15%가 주일학교 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교회에 다니는 성도와 목회자 10명 중 8명은 주일학교 출신이었습니다. 이는 주일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교회의 위기를 교회에서 다음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3D 직업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교사는 교회 사역 중에 3D에 속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가장 일찍 와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학생들과 부딪치며, 성도들로부터 학생들 교육을 잘못시킨다고 책망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장 일찍 교회에 나와 헌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교사로 헌신하는 성도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스승의 주일, 교육 주일을 맞이하면서 주일학교 교육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헌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교사로 헌신하고, 우리 교회에 다음 세대들이 많아 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회 교육에 있어 핵심은 무엇입니까? 교회 교육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더 알고 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돌’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돌이라고 합니까? 4절은 ‘보배로운 산 돌’, 5절은 ‘산 돌’, 7절은 ‘보배로운 모퉁이 돌’, 7절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과 모퉁이의 머릿돌’, 8절은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 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로,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산돌입니다. 베드로는 독특한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장 3절에서는 ‘산 소망’에 대해, 1장 23절에서는 ‘살아 있는 말씀’에 대해, 그리고 2장 4절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는 생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고 믿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그리스도께 나와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요긴한 모퉁잇 돌입니다. 6절은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 28장 16절의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라는 말씀의 인용입니다. 모퉁이 돌은 건축을 할 때 기초로 사용하는 큰 돌입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벽을 견결하여 집을 짓습니다. 그리스도는 시온에 둔 모퉁이 기촛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의 기초가 되십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의 시작이시며 신앙생활의 중심이십니다. 우리의 구원과 신앙에 있어 그리스도는 가장 요긴한 즉 중요한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없는 구원은 없으며, 그리스도 없는 신앙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와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부딪치고 넘어지게 하는 돌입니다. 8절은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보배입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분이십니다. 반면에 비신자들에는 쓸모없는 돌에 불과합니다. 길을 가다가 발에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돌부리에 불과하며,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보배로 여기는 자는 질그릇에 보배를 가진 존귀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길거리에 거추장스런 돌로 여기는 자는 넘어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신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사망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일어서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배로운 산돌과 요긴한 모퉁잇돌로 알고 믿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4절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라고 합니다. 누가 구원을 얻습니까? 누구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누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산돌이요 모퉁이 돌이신 그리스도께 나아온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나와 회개하고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예수께 ‘나아가’라는 단어는 한번 만 나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평생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일에 전념하고 몰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중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기도의 자리에, 헌신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5절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산돌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무엇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닮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성숙이며 거룩함입니다. 신령한 집을 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신령한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았을 때 나타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됩니다. 우리는 신령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이며, 신령한 예배를 통ㄹ해 영적으로 더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선포해야 합니다. 9절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족속입니다. 왕과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거룩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두운 가운데서 신기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4장 43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1장에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 찾아갔습니다. 그를 만나 어떻게 했습니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1장 26절은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바나바가 그리스도인인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그를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함께 일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쳤습니다. 이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전도요 선교요 교육이요 동역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고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교회와 목장 식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