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4:1-14 예화) 영화 벤허 영화 벤허의 원작자인 루 윌리스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는 없다’ 는 가정을 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던 중 회심을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자료를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는 실제적인 인물이며 구원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벤허라는 소설을 썼으며,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2016년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이 다시 제작을 했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위협하는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며 순교의 역사입니다. 본문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사람들이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을 위해 귀환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기와 상황을 핑계로 적극적으로 재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로 있었으며, 성문은 달지 못한 채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 재건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성을 건축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성벽 건축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방해하고자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방해했습니까? 그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입니다. 산발랏은 호른 사람으로 바벨론에서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그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부터 이스라엘을 흥왕케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도비야는 산발랏의 최측근 참모였습니다. 그들이 성벽 재건을 방해한 것은 신앙적이 이유만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지금까지 누리던 기득권을 잃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느헤미야에 대한 시기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과 욕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성벽 재건을 방해했습니까? 1절에서 4절은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라고 합니다. 첫째, 그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화를 내며 성질을 부렸습니다. 둘째, 유다 백성들을 비웃었습니다. 조롱하고 우습게 여겼습니다. 셋째,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쓸모없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넷째, 느헤미야와 백성들을 업신여겼습니다. 멸시를 하고 모욕을 했습니다. 다섯째, 욕을 했습니다. 비난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낙심시킴으로 성벽 재건의 역사를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한 사명을 느헤미야와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은 산발랏과 도비야를 이용하여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방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의 회복을 이루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 라엘이 온전한 신앙공동체로 서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해는 그 당시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악한 사탄은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을 갖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도들을 낙심하게 하며, 헌신의 열정을 식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의 연약한 부분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성도가 되어, 온전한 교회를 세우는, 온전한 헌신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현대의 안티 기독교나 안티 기독교 카페의 활동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 대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사람들의 행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분노하고 냉적이며 미워하고 비판을 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갖고 있자면 이 시대의 산발랏이며 도비야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해가 일어날 때 결코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에 대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방애를 극복하고 성벽 재건을 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4절과 5절은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라고 합니다. 9절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라고 합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업신여기고 욕하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시며, 포로가 돼 남의 땅으로 끌려가게 하시며, 그들의 죄악을 덮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주 앞에서 지우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악한 사탄이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차드윜은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의식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떤다.” 고 했습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가장 먼저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으면 말씀도 봉사도 예배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할 수 있어도 온전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이 온전히 세워지기를 원하십니까?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세우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악한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신앙도 가정도 교회와 나라도 세울 수 있습니다. 기도로 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들은 격려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6절은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고 합니다. 그들은 성벽을 전부 연결되었습니다. 높이도 절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마음을 다해 열심히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7절과 8절은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산발랏과 도비야만 아니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심히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음모를 꾸미고 예루살렘에 와서 싸우고 훼방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밤낮으로 경비병을 세워 이 위협에 대비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성벽을 재건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0절은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유다 사람들이 찾아와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할 일은 아직 산더미 같은데 일꾼들의 힘이 다 빠져 버려 성벽을 쌓을 수가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열 번이나 말을 했습니다. 산발랏이 의도한 대로 이스라엘 내부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벽 재건을 마칠 수 없다는 낙심과 절망이 찾아 온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원하는 것은 성도들의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원망하고 불평하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계속되는 방해와 문제로 인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정서가 충만한 교회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도들이 긍정적이고 신앙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14절은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부정적이고 불평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각 지파별로 칼과 창과 활로 무장을 시켜 성벽의 뒤 낮고 넓게 펼쳐진 곳에 배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백성들과 귀족과 관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시오. 위대하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가정을 위해 싸우시오.” 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격려했습니다. 낙심하는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격려와 용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기억하는데 있습니다. 20절은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싸우신다는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만으로 교회를 세우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악한 사탄과 사람들에 의해 방해를 받지만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며 격려하며 연약하고 무너진 교회를 세우고, 더 온전하게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