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에서 전도자로 요나서 2:1-9 오늘은 요나서 2장 1절에서 9절을 통해 ‘도망자에서 전도자로’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특히 제주극동방송후원을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결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방송선교는 직접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그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제주극동방송을 축복합니다. 이 귀한 사역에 사랑하는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고 후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주극동방송을 위한 후원의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는가? 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도망자에서 전도자로 변한 요나를 살펴보며 거룩한 변화와 결단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1장 1절과 2절은‘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라고 합니다. 그는 아밋대의 아들이었으며 가드헤벨 출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풍부한 경제력과 탁월한 건축술과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상을 숭배할 분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광폭한 악을 행하는 도시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에 때 활동하던 선지자 요나를 통해 회개를 요청하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요나는 어떻게 합니까? 1장 3절은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갔으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 배 삯을 주고 배를 탔습니다. 그 당시 요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달아나는 도망자였습니다. 그런 도망자 요나가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까? 3장 3절은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도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도망자에서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불순종하는 사람에서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요나에게 일어난 일은 1장 4절에서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다시스로 가는 중에 큰 폭풍우가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자기들이의 경험과 신들의 도움을 요청으로 풍랑을 뚫고 항해를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배에 일어나는 재난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제비를 뽑았으며 요나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요나는 바다에 던졌으며 사나운 바다는 잠잠해졌습니다. 하나님은 큰물고기를 준비하셨다가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요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 일에 대한 요나의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도망자에서 전도자가 되는데 있어 나타난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매우 놀라운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요나가 도망자가 되었을 때에는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니느웨 성에 들어가 악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회개할 것을 요청받은 요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첫째, 왜 악한 그들을 멸망하시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권선징악, 인과응보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왜 그들을 위해 나를 사용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반면에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하시는데 있어 자신을 사용하시는 것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요나는 그런 질문을 하며 하나님의 생각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도망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런 요나가 전도자가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절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고 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생각하는 사람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도망자에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요나의 기도는 무엇입니까? 그의 기도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고난 중에 드린 기도입니다. 2절은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라고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깊은 바다 속에 던지셨다고 합니다. 물이 자신을 에워 쌓으며 물결과 파도가 덥혔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당한 고난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고난 속에서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스올의 뱃속 즉 음부에서 부르짖었으며 하나님은 그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고난의 상황에 처할지라도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고난 중에 기도하는 자가 헌신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절망 중에 드린 기도입니다. 5절과 6절은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물이 영혼을 에워싸고 깊은 바다가 삼키고 바다풀이 머리를 감쌌다고 합니다. 그는 산의 뿌리 즉 바다 깊은 곳에 내려갔으며,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절망의 상황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절망이 희망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도입니다. 7절은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라고 합니다. 요나는 영혼이 피곤할 때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성전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인생의 고난과 위기를 만나면 누구를 생각하십니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피곤하고 곤비할 때 오직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는 줄 믿습니다. 넷째, 서원의 기도입니다. 9절은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요나는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실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나 은혜를 버렸으며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그는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의 서원을 신실하게 지킬 것을 고백했습니다. 이는 모든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너무 크기에,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문제 해결이나 삶의 변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 줄 믿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선택했습니다. 이에 요나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고가 뱃속에서 요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에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헌신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생각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불신앙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순종자가 되고, 헌신자가 되고, 전도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