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5) : 사데 교회 요한계시록 3:1-6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다섯 번째 시간으로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받은 사데 교회를 나누며 은혜를 받았으면 합니다. 특히 사데 교회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데 교회를 사랑하셨기에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절은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라고 합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는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일곱은 완전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사데 교회에 편지하시는 예수님의 완전하신 성령 충만을,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완전한 관심을 가지신 주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유일하고 완전하신 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요 주인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은 교회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관심도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중에 주님의 몸인 교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거나,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타락과 침체는 그리스도를 떠났으며 다스림을 받지 않는데 있습니다.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통치를 받는 성도들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데 교회의 실상은 어떠했습니까? 사데는 두아디라 남쪽으로 70Km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특히 ‘황금의 도시’라 불리고 있었는데, 이는 사데 지역이 사금이 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재정적으로 풍족했으며 그로인해 향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발 340m에 세워진 도시로 삼면은 절벽으로 되어 있었으며 출입은 한쪽으로만 할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았던 안전하고 평안한 곳이었습니다. 재정이 풍족하고 향락을 즐기며 평안한 생활을 하는 도시에 교회가 세워진 때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시면서 칭찬과 책망을 하셨는데, 그 중에 사데 교회만은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이는 사데 교회가 변질과 타락이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적인 환경이 좋다고 좋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이 나쁘다고 교회가 나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환경이나 상황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를 사랑하셨기에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 편지를 통해 사데 교회의 실상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의 영적 실상은 어떠했습니다. 그들의 영적 실상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절은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합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의 행위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소문이나 평판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데 교회에 대한 소문과 평판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문과 평판은 살아있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죽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지만 주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본질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 필요를 공급하는 구제, 사랑의 교제입니다. 이렇게 예배와 교육과 전도와 구제와 교제가 이루어지 않으면 명목상 교회요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도, 성도들을 구원하신 것도,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도 이름만 갖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에 합당한 본질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데 교회는 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은 사데 교회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데 교회는 이름만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만 다니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교회였으며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속은 교회도, 그리스도인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절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합니다. 2절은‘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죽었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행위였습니다. 물론 믿음과 행위를 명료하게 이분화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데 교회는 믿음이 온전한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신실함과 온전함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책망을 받은 사데 교회가 행위의 온전함이 없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온전함은 ‘플레로오’ 로 ‘완전함, 충만함, 성취함’ 입니다. 그 중에 본문에서의 온전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서의 성취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향락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축복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직분에도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예화) 음주와 흡연을 위한 비용을 선교비로 제주노회 속한 한 교회의 청소년들이 필리핀 선교 중에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집사님의 헌신으로 인한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남자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고백을 했습니다. 집사직분을 받았음에도 음주와 흡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를 드리면서 음주와 흡연을 하는데 쓰는 돈을 좀 더 가치 있고 신앙적인 것에 사용하고자 하는 거룩한 부담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음주와 흡연을 중단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구입하던 돈을 선교비로 헌금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필리핀 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집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직분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집사를 더욱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요긴하게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과 행함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행함으로 믿음의 온전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감사함으로 감당하셨으면 합니다. 재물을 온전히 사용하고, 직분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권면은 무엇입니까? 첫째,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2절은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합니다. 사데 교회와 성도들이 행위의 온전함이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영적으로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재물과 향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잠이 들은 것도, 영적으로 죽었다는 사실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영적으로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행위를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행위의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합니다. 말세가 되면 나타나는 현상은 교회와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재물과 향락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지고, 영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 회개해야 합니다. 3절은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사데 교회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들이 회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데 교회에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환경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재물과 안전한 환경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들었습니까? 그 재물과 환경을 통해 온전한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데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과 환경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다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향락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헌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것을 생각하고 지켜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소망과 약속은 무엇입니까? 첫째, 소망입니다. 4절은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고 합니다. 사데 교회에는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는 행위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은 소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 같지만 의를 행하는 소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소망이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깨어 기도하는 적은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약속입니다. 5절은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육체의 향락을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입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을 결코 지우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예수님께 속한 자라고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우리도 재물과 향락에 대한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 온전한 행위를 가져야 합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얻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데 교회는 생각하지 조차도 싫은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칭찬이 아니라 책망만 받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한 편지를 통해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행위를 가질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정신을 차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회개가 있는 곳에 회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회복을 경험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