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일서 3:1-3 예화) 흙이 꽃병으로 한 사람이 도자기를 사기 위해 가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에 들어가면서 유리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꽃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주인을 향해 감탄을 하면서 ‘참 멋있군요. 매우 귀하게 생겼습니다. 얼마면 살 수 있나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고개를 저으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을 다 준다고 해도 저 꽃병들은 팔지 않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에 손님은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습니다. 악한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 놓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사랑하며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쓸모가 없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흙을 집으로 가져와 반죽을 하고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쓸모없어 버려졌던 흙을 갖고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 꽃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흙으로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을 거야!’ 라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를 변화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종종 신앙이 흔들리고 삶이 힘들 때마다 그 꽃병을 바라보며 흙무더기와 같은 자신을 꽃병과 같은 사람으로 만드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꽃병을 팔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쓸모없어 버렸던 흙이 꽃병이 된 것과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1절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을 사랑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풍성하게 느끼고, 더욱 감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 변화는 무엇입니까? 첫째, 신분의 변화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고 합니다. 우리는 본래 마귀와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와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방법의 변화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과 32절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람의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날마다 주 안에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진정한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삶의 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목적의 변화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이 변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의 목적이 변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신분이 변하면 그 신분에 맞게 행동도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은 무엇입니까? 첫째,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2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합니다. 요한은 ‘지금’ 과 ‘장래’ 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며 실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완벽한 존재로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의 유혹에 힘없이 넘어질 수도 있으며,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우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벽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의 모습과 행동을 보면 우리는 절망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좀 부족하교 연약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반드시 재림하실 것이며, 그 때에 우리는 예수님과 같아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같아진다는 단어는 ‘호모이오스’입니다. 이는 로 ‘질은 다르지만 비슷하다’ 는 뜻입니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이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살다할지라도 결코 예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마귀의 미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지혜를 얻어 하나님과 같아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역사하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닮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서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루실 위대한 역사를 소망하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연약하여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갈등과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녀를 결코 버리지 않으며 떠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날에 영화롭게 될 것을 소망하는 자는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그 소망을 바라보며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며, 세상에 속한 것에 집착하며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삶은 소망을 갖고 사는데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과 3절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처녀와 같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영적 신부라는 의식을 가지고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부의 준비를 신랑을 위해 순결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한 것처럼 우리를 유혹하여 영적인 순결함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을 소망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예화) 아버지 어깨에 기대어 국제 예수전도단에서 사역하는 플로이드 맥클랑 목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할 때 하나님이 지니신 ‘아버지’ 의 속성에 대한 강의를 막 끝냈습니다. 그 때 키가 크고 수줍음을 타는 십대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그 때 맥클랑은 매우 지쳐서 휴식이 필요했지만, 그 소녀가 뭔가를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일단 사정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 소녀가 하는 이야기는 산만하고 요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따로 있는 듯해서 잠자코 기다렸습니다. 몇 가지 질문이 끝난 뒤, “뭔가 더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긴장이 풀린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와서 앉더니 “선교사님의 어깨에 기대도 될까요?” 라고 했습니다. “물론이지. 하지만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거지?” 소녀는 울먹이며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제게는 인생의 질문을 던질, 제가 한 일을 자랑할, 저의 비전을 나눌 아버지가 없었죠. 저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실컷 울고 싶었지만 그럴 대상을 찾지 못했어요” 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기댈 만한, 자신을 안아 줄 아버지가 없다는 마음의 상처로 흐느꼈습니다. 소녀가 어깨에 기대어 부끄러움도 잊은 채 울고 있을 때, 맥클랑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맥클라와 소녀는 함께 마음에 있는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텅 빈 마음을 채워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후 수년이 지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시 찾았을 때, 소녀가 찾아와 그 특별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소녀는 우리가 나눈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다며 깊은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깨가 필요하고, 품이 필요하고, 손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어깨를 내밀어 주십니다. 팔을 벌리고 품에 안아 주십니다. 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어깨에 기대어 의지해야 합니다. 때로는 품에 안겨 평안을 얻어야 합니다. 손을 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온 맘과 정성을 다해 불러야 할 그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 입니다. 그 이름만 불러도 감사와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