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단계 요한일서 2:12-14 예화) 복음을 실은 둘로스호 이 배는 우리나라에 1992년과 2001년과 2007년에 방문을 했던 둘로스 호입니다. 그 배는 ‘떠다니는 유엔’, ‘복음 실은 21세기 노아 방주’로 불리고 있습니다. 둘로스는 타이타닉호보다 2년 늦은 1914년에 건조된 이래 화물선·이주자 수송선·여객선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78년에 독일에 본부를 둔 비영리국제구호단체인 ‘GBA’(Good Books for All : 좋은 책을 모든 사람들에게)가 이 배를 구입, ‘둘로스’라고 명명하고 약 103여 개국 560여 항구를 방문하여 3가지 나눔 사업(지식, 구제, 소망)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배에는 세계 청년들을 2, 3년 동안 태우고 다니면서 제자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 제자 훈련의 교육적 목표는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키우는 것’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묵상하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주님을 알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증은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들이 계속해서 성장해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계속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단계를 점검하고, 성장을 위한 거룩한 은혜가 있었으면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즉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가문에 태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조상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또한 사람들의 계획이나 바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와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의 놀라운 역사가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지 않은 자를 결코 자신의 자녀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수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깨닫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속량했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되며, 세상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신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것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도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브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 중에 하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장을 향한 거룩한 갈망을 품고 영적 성장을 위해 수고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영적 성장의 단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향해 ‘아이들아’ ‘청년들아’ ‘아비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성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영적으로 성장해야할 단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나이는 많지만 신앙의 성숙에 있어서 아이들과 같은 성도도 있으며, 나이는 어리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연령이나 교회에 출석한 햇수와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수준 즉 영성에 의해서만 점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영적인 아이입니다. 14절은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라고 합니다. 아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파이디온’ 입니다. 이것은 나이가 적다는 의미도 있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아이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경험이 많이 없는 성도를 말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 아이에 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 3절은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합니다. 영적 어린 아이는 신령한 자가 아니라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그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육신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그래서 영적 아이가 있는 교회에 시기와 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갈등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아니라 성령에 속한 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말씀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영적 아이의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씀을 날마다 적용함으로 말씀의 인도와 능력과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린 아이를 벗어날 때 자신만 아니라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영적인 청년입니다. 13절은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합니다. 영적 아이는 악한 권세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적 청년은 열정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영적 청년은 악한 자를 이긴 자입니다. 이것은 항상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긴다는 것입니다. 전혀 영적으로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패배할 수도있지만 불구하고 결국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신앙과 삶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승리에 도달하는 것을 배우며,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사단과 싸워 이길 줄 아는 사람이 영적인 청년입니다. 14절은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합니다. 영적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말씀을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그 말씀의 지배를 받으며,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알아, 말씀의 능력과 역사로 악한 권세를 이기는 자입니다. 이 세상 권세 잡은 자와 영적 전쟁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공격적인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어떻게 승리하셨습니까? 마귀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을 때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리라고 했을 때에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는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악한 자를 이기셨다면, 우리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청년으로 능력 있는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은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계시로, 때로는 설교자들의 선포로, 그 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전해 진다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되는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 말씀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무기로 세상과 죄악과 마귀를 이기는 자가 영적 청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영적인 아비입니다 13절은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라고 합니다. 또한 14절은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라고 합니다. 요한은 영적 아비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자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아비가 아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영적 아비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이 아비였고 어미였습니다. 이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은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고 합니다. 그는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목숨까지도 주기를 기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절과 12절은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그는 영적인 아비로 다른 성도들을 자녀와 같이 적절하게 돌보았습니다. 때로는 권면하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경고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어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한 수고를 통해 사랑하는 성도들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람을 양육하고 세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더 온전하게 세우고 견고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영적 아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영적 아이에서 영적 청년으로, 영적 청년에서 영적 아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성숙함으로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은 사역을 감당하며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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