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2:3-11 예화) 사랑하면 사랑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사랑하면’ 이라는 말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사랑하면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쓴 책 제목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하면 통한다. 사랑하면 행복해 집니다. 사랑하면 기억하게 된다. 사랑하면 닮아집니다. 사랑하면 눈물이 난다”입니다. 그 외에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랑하이를 위해 인내와 담대함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는 “사랑하면 기도합니다” 와 전도는 성과나 실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사랑하면 전도합니다” 라는 책입니다. 이는 사랑하기에 기도하고, 사랑하기에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 누군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전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할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면 순종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과 순종, 순종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순종해야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그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율법과 규례를 말합니다. 반면에 좁은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을 말합니다. 십계명은 1계명에서 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5계명에서 10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명은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3절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라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는 반드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피상적이고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 안에서 이해하고 경험하는 앎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4절은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라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제로는 예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사랑, 적절한 자기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 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복음의 은혜와 능력 안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사랑하면 계명에 순종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순종하는 이유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징계가 무서워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책망을 받을까? 어떤 불행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이유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유익을 위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분이나, 환경 또는 필요가 순종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욕구가 중심이 된 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근거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유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를 본다할지라도 그것이 말씀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순종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순종은 사랑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5절은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순종과 사랑에 대한 깊은 관련성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합니다. 14장 21절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합니다. 14장 23절과 24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6절은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랑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사랑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것을 새 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전혀 새로운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에 있던 계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옛 계명이라는 것은 구약에 모세를 통해 주심으로 전해진 계명이라는 의미에서, 새 계명이라는 것은 신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며, 계명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순종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옛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새로운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대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하라’는 것은 고전적인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식상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없고, 형식적이고 왜곡된 사랑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역시 고전적인 주제요, 어쩌면 형식적인 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명을 다시 언급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새롭게 생각하고 순종하라는 요청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8절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고 합니다. 사랑의 계명은 영원히 지켜야할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예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에 하늘 영광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으며, 사랑하시기에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또한 성도들 안에서 이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심으로 어두움의 권세가 물러갔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빛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고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지 않은 것은 어둠에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성도들을 가리켜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는 빛에 거하는 자요, 빛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어두움이 아닌 빛에 거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9절과 10절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라고 합니다. 요한은‘나는 빛 가운데 있습니다 즉 나는 예수님 안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죄악 가운데 사는 것이며, 마귀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진리 안에 거하는 자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요, 빛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자신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1절은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어둡게 함으로 형제를 미워하게 하며, 어떻게 사랑해야할지 모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움은 감정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서의 접근과 해결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미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은 그것은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영안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분리될 수도 분리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적절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순종을 통해 사랑을, 사랑을 통해 순종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과 사랑을 통해 예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새 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