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꾼(2) : 가이오와 데메드리오 요삼 010512 사도 요한은 사보 다불 다음으로 많은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것은 요한복음, 요한일서, 이서, 삼서, 요한계시록입니다. 사도 요한은 편지를 보내면서 특별히 세 사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은 교회 부정적인 영향을, 다른 두 명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직원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세워지는 분들이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분들을 교회 일꾼으로 세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일꾼은 누구였습니까? 첫째, 가이오입니다.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를 위해 영혼이 잘되고 육체가 건강하고 모든 일에 형통하기를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혼과 육체가 건강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형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가이오는 어떤 그리스도인이었습니까? 첫째,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3절은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고 합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는 진리를 행한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아비인 요한을 기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복된 일입니다.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하며, 영적인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자가 아니라 기쁘게 하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둘째, 신실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5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라고 합니다. 그는 형제들을 섬기는 일, 즉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을 무엇이든지 신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성경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그네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니는 순회 전도자를 말합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자들을 잘 섬기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1절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하면 사람들에게 자신도 대접을 받습니다. 특히 복음의 일꾼을 대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대접하십니다. 셋째, 사랑을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6절은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교회 앞에서 가이오가 베푼 사랑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이는 그가 요한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행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인정받는 자였습니다. 박윤선 목사는 성도들이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1) 마지못해 하는 것, 2) 명예를 위해 하는 것, 3) 개인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이오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랑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을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은 왜 귀한 일입니까? 8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한 수고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복음을 위해 동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이오처럼 하나님께서 복주시기에 합당한 사람,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데메드리오입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낸 교회에는 가이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가 있었습니까? 9절에서 10절은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라고 합니다. 그 교회에 디오드레베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거짓말로 요한을 나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도우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돕는 사람들마저도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교회의 상황에서 성도들을 향해 무엇을 권면합니까? 11절은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요한은 성도들을 향해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은 악한 것을 저절로 본받게 되는데, 선한 것은 노력해야 본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영향력을 극복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악을 선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요한은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고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기에 영적인 친밀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하나님께 속하고 선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은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누구를 언급합니까? 12절은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고 합니다. 악한 디오드레베와 전혀 다른 선한 사람으로 데메드리오를 말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는 요한이 시무하던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 복음에 비추어 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합당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요한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그의 신앙과 인격을 인정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같은 성도들이 더 많아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진리 안에서 행하며 신실하게 섬기며 겸손한 자세로 헌신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며 악한 영향력을 극복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로 우리가 가이오아 데메드리오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