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베드로후서 3:8-13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사느냐? 는 무엇을 믿고 생각하고 기억하느냐? 에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것을 믿고 생각하고 기억할 때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과 미혹을 받을지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헌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박해와 핍박을 받아도 신앙이 순전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6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갑니다. 다음은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4절은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합니다. 이들은 재림과 심판을 믿지 않기에 방탕하고 방종하게 살아갑니다. 그다음은 재림과 심판의 지연으로 인해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방황하고 나태한 신앙과 삶을 삽니다. 베드로는 지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베드로후서 3장 8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시간의 개념에 대한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 같을 수 있으며, 하루가 천년 같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인간의 시간 개년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크로노스(Kronos)로 물리적이고 양적인 시간입니다. 반면에 카이로스(Kairos)로 결정적인 순간이며 질적인 시간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은 크로노스입니다. 그런데 재림은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재림을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간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시편 90편 4절의 현대어 성경은 ‘주에게는 천 년도 지나간 하루 같고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천년도 하루 같고, 밤의 한 시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의 시간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달려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거나 변질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거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거짓 교사의 미혹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영적인 긴장을 늦추고 영적 태만과 게으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이 확실하지 않으면 영적 긴장감을 상실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열정을 잃고 차지도 덥지도 않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림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항상 깨어 있었으면 합니다. 거룩한 열정을 갖고 헌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9절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재림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신 것도 아닙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믿음 없는 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태만이나 능력의 한계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긍휼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도로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더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에 있습니까? 10절은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합니다. 사람은 언제 재림이 일어나는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와 때를 예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그 시간에, 그때 예수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교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둑같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악한 세상과 죄인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로 모든 피조물을 심판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있을지 모르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은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도둑과 같이 홀연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은 성도들은 도적같이 갑자기 찾아와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깨어서 옷을 단정히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즉 언제 재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생활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재림을 준비하고 맞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첫째,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입니다. 11절은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중심으로 경건하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며, 경건함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 육체의 정욕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을, 육체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날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12절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날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 수고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에 떠나가고 풀어지고 드러나는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재림 신앙에 소망을 두며 그날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슬픔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잘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신란 되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새 하늘과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3절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의 의가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해야 합니다. 재림의 날은 악한 사람들에게는 파멸과 심판의 날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광과 생명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슬픔도 질병도 고통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스라엘의 회복이 언제 있을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사도행전 1장 7절과 8절은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때와 시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때와 시기는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알 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령의 임재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때와 시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의 재림 신앙과 경건한 생활과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믿고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