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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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벧후 2:-16)2024-07-1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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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사람과 불의한 사람

베드로후서 2:9-16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불편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에 관한 내용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태도에 있어 중요한 것은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전하고 듣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에 전해야 하며 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항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항은 물체에 전류가 흐를 때 이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심리학에서 저항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로이트입니다. 그는 저항을 자아가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방어에 대한 욕구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저항은 하나님이나 말씀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너져야 변화나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이유를 찾으나,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을 찾는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예배, 기도, 전도, 헌신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저항을 무너트리고 변화와 성장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는 교회 외부에서 일어났던 박해와 핍박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베드로후서는 교회 내부에 있었던 신앙과 복음의 변질과 왜곡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후서에 미혹과 유혹이라는 단어가 4번 나오고 있습니다. 317절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리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불경건한 자들로 영적인 미혹을 통해 신앙생활의 길을 방황하게 하며,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미혹에 이끌리면 결국 실족하며 넘어지며 떠날 수 있습니다. 이에 항상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고 있습니까? 혹시 신앙생활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떤 미혹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거룩한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고 견고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경건한 자들과 불의한 자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는 영적인 교훈과 도전은 무엇입니까?

 

첫째, 경건한 사람들입니다.

9절은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을 시험에서 건져내십니다. 경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들입니다(2:5).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으며 불법한 행실을 보고 괴로워했던 롯입니다(2:7-8).

 

노아는 모든 생각과 계획과 마음과 행실이 악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롯은 성적으로 타락한 음란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시험과 유혹과 미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미혹과 유혹이라는 시험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노아와 롯이 살던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시대에 경건하게 살며, 시험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영적 미혹과 유혹이라는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 길을 잃고 방황하지 말고 믿음을 기초로 말씀과 기도를 기둥으로 세우고 사랑으로 영적 성전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 경건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를 시험에서 건지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불의한 사람입니다.

9절은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실 것입니다. 이는 악한 사람은 심판 날까지 계속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계속되는 징계로 인한 고난을 통해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징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210절과 11절은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식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 가볍게 생각하거나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징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게 합니다.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그 징계가 달갑지 않고 괴로운 것 같지만 후에 그것으로 단련을 받은 사람들은 의와 평안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징계하실 수 있습니다. 징계의 고난과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때 죄로 인한 징계인지, 의를 위한 고난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만약 죄로 인한 징계의 고난과 고통이면 감사함으로 받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경건한 삶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21절에 언급된 거짓 선생들과 이단들입니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 불의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을 따라 살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교만하여 비방했습니다.

10절과 11절은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죄악을 저지르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교만할 뿐 아니라, 영광스러운 천사들에 대해서도 욕하며 비방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천사도 하지 않는 악한 행위였습니다. 이에 그들은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생각 없는 짐승 같아서 결국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악을 행합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과 세우신 권위를 멸시합니다. 악한 말로 비방하고 무시합니다. 특히 비방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비방은 βλασφημέω(블라스페메오)나쁘게 평가하거나 말하다, 훼방하다는 것입니다. 비방은 교만에서 나옵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하여 비방이 아니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육체의 정욕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비방하지 말고 하나님과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음란한 생활을 했습니다.

13절과 14절은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불의의 대가로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낮에 흥청거리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잔치를 벌일 때도 속이기를 꾀하고 그것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들의 눈은 음란으로 가득 차서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꾀어 욕심을 채우는 것에 능숙한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술에 취하고 방탕한 생활은 밤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불의한 사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즐기고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음탕한 마음을 가진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며 죄를 범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유혹하여 함께 악을 행하는 일에 동참을 시킵니다.

 

우리가 신앙과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주의해야 하는 것은 어떤 마음과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가?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거룩한 마음과 시선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육체의 쾌락과 만족을 위해 죄를 범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며 세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재물을 사랑했습니다.

15절과 16절은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잘못된 길에 빠져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발람은 악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사랑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말을 못 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발람의 미친 행동을 막았습니다.

 

베드로는 민수기 22장에서 24, 31장을 배경으로 불의한 사람들을 발람의 길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발람은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서 발락의 요구를 따라 이스라엘의 남자들을 음행과 우상 숭배와 빠지도록 했습니다. 재물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돈에 대해 무엇을 경고하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69절과 10절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사모하는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서 떠나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렀습니다.

 

모든 죄악의 핵심과 중심에 돈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필요하고 중요하나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우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건한 자로 살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재물에 대한 탐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재물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재물에 대한 탐심과 유혹을 극복하고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의를 행하는 자로 살았으면 합니다. 불의한 자가 아니라 경건한 자로 살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교만하여 비방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하여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육체의 쾌락과 기쁨이 아니라 거룩한 영적 즐거움과 만족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시지만, 불의한 자는 징계하십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분별하며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