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1-3 종종 신앙생활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이하다는 것은 편안하고 한가롭게 생각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신앙생활의 편안함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때로는 박해와 핍박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합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하면 박해와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시험과 시련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은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시험을 참아야 합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야 합니다. 때로는 유혹과 미혹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7절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합니다. 믿음이 흔릴리거나 넘어지지 않기 위해 유혹과 미혹을 분별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을 잘 극복하고 성장했을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잘 극복하지 못했기에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 세상의 삶을 위한 것만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해 거룩한 전쟁입니다. 또한 우리와 영적 전쟁하는 악한 마귀와 육체의 정욕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랑 중에 베드로는 탁월한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은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라고 합니다. 시험에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과 41절은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0절과 72절은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사역하고 있을 당시에 활동하던 자들은 영적인 유혹과 미혹을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1절a은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을 행하면 심판이 있을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향해 심판이 아니라 평안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것만 전한 것입니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은 스스로 지어낸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으며,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와 같은 거짓 선생들이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베드로가 사역하고 있었을 때는 거짓 선생들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이 무엇을 하는가? 그들을 따르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을 따르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1절은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가만히 이단을 끌어들입니다. 이단은 헬라어 αἵρεσις(하이레시스)로 ‘선택’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정통 교리에 배치되는 것을 선택하며 그 사상을 좇는 파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자는 이단(異端)으로 ‘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을 접하면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듣다 보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단의 핵심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특히 그들은 세대별 구원을 주장합니다. 구약은 율법 시대로 모세가, 신약은 은혜 시대로 예수님이, 현대는 종말 시대로 자신의 교주가 구원자라로 합니다. 그들은 시대마다 구원의 방법과 복음이 다르기에, 자신들이 가르치는 교리를 듣고 깨달을 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 사역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로 인해 속량, 즉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자를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멸망을 받습니다. 둘째, 악한 행실을 합니다. 2절은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이단의 특징은 성경과 신앙의 변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악한 행실, 즉 호색에서 나타납니다. 호색은 ἀσέλγεια(아셀게이아)로 ‘방탕, 방종’의 뜻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이단 중에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타락론에 있습니다. 이단 중에는 타락을 성적 모티브에서 찾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단 계보에서 김성도는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뱀으로 나타난 사단과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와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체를 가린 것이 증거라고 합니다. 그의 주장은 유명화, 백남주, 정득은, 황국주, 김백문을 거쳐 통일교 문선명의 원리강론과 JMS 정명석의 비유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명석이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그런 신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구원론에 영향을 미쳐 성적인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에 성적으로 방탕하고 방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 5장 19절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라고 합니다. 호색은 육체의 일입니다. 그것은 어두운 죄악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받게 됩니다. 셋째, 재물을 착취합니다. 3절은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고 합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어낸 것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지어냅니까? 재물에 대한 탐심입니다. 그들은 욕심을 채우려고 거짓말로 착취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입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날은 다미선교회 이장림이 주장한 휴거일입니다. 그런데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장림은 구속되었습니다. 그가 구속된 것은 사기죄였습니다. 왜냐하면 휴거를 주장하면서 성도들에게 개인 계좌로 돈을 받았는데, 무려 34억 4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는 성도들이 자원하여 헌금한 것이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그의 집에서 발견된 환매조건부채권이었습니다. 채권 만기일은 휴거 후인 1993년 5월 22일로 되어 있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되면 그 채권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휴거를 주장하지만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휴거를 주장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단 중에는 기업을 운영한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사람의 영혼이 아닙니다. 구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재물입니다. 그래서 이단에 빠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이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얻고 사용하는 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단을 조심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주의하라는 것은 마음에 깊이 새기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단을 따르면 온전한 신앙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실이 악해질 수 있습니다. 재물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영적인 유혹과 미혹은 더 해질 수 있습니다. 이에 영적인 경각심과 민감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바른 신앙, 바른 복음, 바른 행실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