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3) 베드로후서 1:8-11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과 보배로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졍욕으로 인해 세상의 썩어질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영적인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믿음을 기초로 말씀과 기도를 기둥으로 건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를 더하며 사랑으로 거룩한 영적인 집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시간이 늘어가며 직분을 받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희가 더욱 힘써 ...더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누구입니까? 보배로운 믿음과 약속을 받은 자, 즉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언약 백성 된 우리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욱 힘써 더해야 합니다. 이는 최선을 다해 열심을 가지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관심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면 어떤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믿음과 건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더 할 때 있을 유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8절a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합니다. 베드로후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1장 2절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합니다. 1장 3절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합니다. 2장 20절은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앎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많은 능력과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에 풍성하고 충만한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앎으로 신기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서의 아는 것은 ἐπίγνωσις(에피그노시스)로 명확한 지식, 혹은 통합된 지식입니다. 그 단어를 체화(體化)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체화는 체질화(體質化)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직접 경험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앎을 삶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 수 있으며, 그 앎이 거룩한 삶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으로 부지런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풍성한 열매를 맺는 자가 될 것입니다. 8절b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열매를 맺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상수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유실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7장 18절과 20절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합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이에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건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맺어야 하는 신앙과 인격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더 온전히 참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열매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통해 농부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더 풍성한 열매를 더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9절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고 합니다. 이런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언급한 하나님의 성품 8가지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는 자는 맹인입니다. 성경에서 맹인은 육체의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영적으로 어두워 진리를 볼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맹인은 영적 소경으로, 특히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은 영적 소경에서 눈을 떠 무엇을 했습니까? 사도행전 26장 17절과 18절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구원하여 이스라엘과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실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고 영적인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이에 어두움에서 빛을, 사탄의 권세에 결박되었단 자가 영적 결박을 풀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고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는 맹인이 되어 죄 사함이 은혜를 잊고 살게 될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하늘의 기업에 마음을 두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지 못함으로 맹인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멀리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에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고, 영적인 눈을 열어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10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향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권면은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함을 통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첫째,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10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실족은 πταίω(프타이오) 로 ‘비틀거리다, 걸려 넘어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넓은 문과 넓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매서운 추위와 비바람과 폭풍우를 헤치고 가는 길과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비틀거리며 흔들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발을 헛디디어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는 실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항상 견고한 신앙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지 않은 성도들이 인해 실족하여 넘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확신하고 신앙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다른 사람을 감동하게 하며, 우리도 더 견고한 믿음 안에 거할 수 있게 합니다. 실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실족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충분히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대접받기를 원하며 가르치기를 즐겨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천국 문을 사람 앞에서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못할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도 들어갈 수 없게 막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11절은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넉넉히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공급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자가 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때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앎이 삶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낙심하거나 실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게 하며 세울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선교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회를 세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품격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