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전염병 같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4:1-9 최근에 돼지에게 치명적인 죽음을 가져다주는 전염병인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있습니다. 그 병은 전염되기 쉽고 일반적으로 치명적인 돼지의 바이러스성 질병입니다. 일명 ‘혹멧돼지콜레라(warthog fever)’ 라고도 합니다. 1910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견된 이래 유럽을 거쳐 아시아 일대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이 병에 걸린 돼지는 고열과 호흡 곤란을 거쳐 일주일 안에 대개 사망을 합니다. 한국에서는 2019년 9월 17일 경기도 파주에서 처음 발생한 후 경기도 연천, 인천광역시 강화, 경기도 김포 등지에서 연속해서 발병이 확진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전염병이라는 단어가 2번 나옵니다. 누가복음 21장 11절로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고 합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있을 징조로 실제적인 전염병입니다. 반면에 바울에 대해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고 하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더둘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5절은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고 합니다. 더둘로가 보기에 바울은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들으면 흩어진 유대인들이 소요를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유대교를 떠나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둘로는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인물 중에 바울을 통해 ‘전염병과 같은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바울은 무엇에 있어 전염병과 같은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바울의 열심입니다. 열심은 어떤 일에 온 정성을 쏟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매우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열심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의 열심은 어떠했습니까? 빌립보서 3장 5절과 6절은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철저한 유대인으로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이스라엘 사람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해 있는 히브리 사람 중에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충실했던 바리새인으로 율법이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신실한 유대교인들처럼 하나님께 대해 열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종교적인 열심히 특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데 열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240Km나 떨어져 있던 다메섹에 가서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의 열심은 어떠했습니까? 고린도후서 11장 2절과 3절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 합니다. 바울에게 있는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열심에 전염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열심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예수님의 정결한 신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뱀, 즉 사단의 미혹을 받아 마음이 그리스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히 세우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그런 열심을 인정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바울에게 있던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열심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디도서 2장 14절은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열심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이에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불법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깨끗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한 열심을 통해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선한 일을 하는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는 의를 위해 고난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선한 일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한 열심을 갖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갖지 않고 선을 행하는데 열심을 다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0절과 11절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믿음의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친구와 같이 다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어 부지런히 헌신해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자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심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우애하고 열심히 존경하고 열심히 헌신하고 열심히 섬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바울의 열망입니다. 열망은 간절하고 뜨겁게 소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열심은 열망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단순히 열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열망을 통해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우리의 열심이 소원과 목표와 비전이 되는 것이 열망입니다. 바울에게 있었던 열망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과 21절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고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냐? 아니면 죽는 것이냐? 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아도 죽어도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느냐? 에 있었습니다. 이에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열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얻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한 거룩한 열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복음 전파입니다. 로마서 1장 25절과 16절은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바울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영광이요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을 수 있는 것을 은혜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로마를 방문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지로 써서 먼저 보냈습니다. 그 후에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로마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간절한 소망, 간절한 열망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영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음 전파에 대한 열망이 우리에게도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에 대해 무엇을 권면합니까? 첫째로, 복음 전파는 명령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과 2절은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주님의 나타나심과 주님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말씀, 즉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3장 8절은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고 합니다. 만물을 심판하시는 주님께서 복음 전파를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에 순종하며 복음을 전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아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그들의 피를 우리에게 찾으실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거룩한 명령입니다. 명령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복음 전파는 사명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과 17절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복음 전파를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만류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도행전 20장 23절과 24절은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알려주셔서 예루살렘 들어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님께 받은 사명,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그 사명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복음 전파에 대한 열망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성령께서 뜨거운 마음을 주시고, 간절한 열망을 주시기 원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명령과 사명으로 알고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열심과 열망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열심과 열망이 충만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을 통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전염병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