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자녀의 확신 요한일서 5:13-21 예화) 구원의 확신 청교도 목회자 존 라일(J. Ryle)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 “믿음이 뿌리라면 확신은 꽃과 같다. 뿌리 없는 꽃은 있을 수 없지만 꽃이 없는 뿌리는 있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구원과 구원의 확신도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받은 구원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구원의 능력, 즐거움, 감격, 감사와 같은 여러 유익을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갖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인이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한 존재인지, 누구를 위한 존재인지를 알게 합니다. 둘째,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어떤 영적 미혹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있으며, 신앙과 삶의 환난과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셋째, 헌신의 동기와 열정과 목적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가장 큰 힘은 구원의 확신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안다’ 라는 단어가 6번 나오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지식과 확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다’ 는 단어를 ‘확신’ 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읽어도 의미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문장이 선명한 뜻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 자녀의 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쓰게 된 목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요한 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3절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요한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들’ 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믿는 구원 받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즉 구원의 확신에 대한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은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 객관적인 진리를 제공해 주는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느낌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여기거나 사실을 사실로 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로 믿는 것이 믿음이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착각하는 것이 미신이며,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불신입니다. 예수님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습니까? 그리고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구원을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11절과 12절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 즉 영접한 자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성도들은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까? 첫째, 기도 응답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그 자녀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요한은 기도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14절은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에게 있는 특권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불신앙이며 불순종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기도에나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14절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고 합니다. 기도를 마치 소원성취를 위해 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도의 일부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사람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루는 것에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에게 주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며 무엇을 가져야 합니까? 15절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구하는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욕과 욕심에 근거한 것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4장 2절과 3절은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고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의도와 목적을 갖고, 선한 것에 사용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요한복음 14장 13절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이라고 합니다. 시편 50편 15절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의나 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 응답은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여 응답 받는 것은 더 많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더 진실하게, 더 많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음으로 더 많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죄 사함의 확신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죽음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원죄와 자범죄로 나누고 있습니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죄를 말합니다. 그 원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자범죄는 인간의 악한 의지와 연약함으로 인해 짓는 죄를 말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원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인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악함과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회개하며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죄를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경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악입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죄이며, 불경건은 거룩하게 살지 않는 죄입니다. 불신앙의 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사함을 받습니다. 반면에 불순종과 불경건의 죄는 지는 죄를 회개함으로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면 불행과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사망과 불행을 가져 오는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요한은 죄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6절과 17절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라고 합니다.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성령의 구원 역사를 거역하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인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죄입니다. 이는 불신앙의 죄악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사함을 받는 죄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연약함이나 실수로 인해 범한 죄를 말합니다. 그 죄를 자백하면 곧 회개하면 죄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때로는 죄의 유혹 앞에 힘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아직 자백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불순종과 불경건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죄하심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백한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죄는 용서되었습니다. 그 죄로 인한 진노와 저주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확신 가운데 의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보호의 확신입니다. 18절에서 20절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고 합니다.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하나님의 자녀가 받은 은혜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악한 의도를 갖고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지키시기에 악한 자가 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악한 자의 손에서 보호하십니다. 셋째,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영생을 받는 자로 확신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을 하나님이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칼빈주의의 견해로 벌콥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영원한 섭리에 의해 선택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잃지 않습니다. 의인의 신분을 빼앗기지 않으며, 영원한 멸망을 받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자가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악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사죄의 확신, 보호의 확신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21절은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만을 갖고 살지 않아야 합니다. 이에 요한은 자신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는 영적인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말고 살피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합니다. 이는 우상숭배의 길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을 갖고 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확신만 갖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과 9절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고 합니다. 지금도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를 삼키기 위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에 영적으로 근신하고 깨어 견고한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자녀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