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과 문으로 가겠습니까? 마태복음 7:13-14 사람들은 시간의 속도에 대해 자신의 나이와 비례한다고 말합니다. 20대에는 20Km로, 40대에는 40Km로, 60대에는 60Km로, 80대에는 에는 80Km로 지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10대가 맞이하는 하루와 80대가 맞이하는 하루가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든, 80대든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지는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중간에 내릴 수 없습니다. 그 길이 자신이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어머니 태에서 나오면서 이미 죽음이라는 길을 행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길을 좀 더 빨리 가느냐? 아니면 늦게 가느냐? 하는 것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이 지난다는 것은 죽음이 그 만큼 더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무엇을 통해 합니까? 일반적으로 생명보험이나 연금보험을 통해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매우 필요한 것이며,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죽음에 대한 준비는 바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초청하여 예배를 하고,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피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 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다른 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길의 종점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 후에 어느 길을 걸어 왔느냐? 하는 것에 의해 서로 다른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문으로 가는 길은 너무 넓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문으로 가는 길은 너무 험해서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하지만 영생의 문으로 가는 그 길은 인간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고 합니다.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인간 세상에는 불신앙과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 동쪽에 천사들을 세우시고 사방에 돌려 칼날 같이 타오르는 불꽃을 두시고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그 길은 오직 한 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께 가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구원을 얻는 길도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여러분을 초청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가는 길을 알려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 길이 너무나 축복된 길이기에, 그 길이 너무 소중한 길이기에, 그 길이 생명의 길이기에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길을 가지 않고,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기에 이렇게 여러분을 초청하여 우리와 함께 생명의 길을 걸어서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길을,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그림은 홀만 헌트가 그린 ‘문 두드리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이 안으로부터 굳게, 조그만 빈틈도 없이 단단히 잠근 어떤 집 문 앞에 예수님께서 바싹 다가서서 계십니다. 마치 그 모습은 안의 동정이라도 살피기 위해서 온 신경을 거기에 기울이고 계신 것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것도 조용히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끈기 있게 문을 열 것을 기다리시며 두드리십니다. 문을 자세히 보니까 밖에는 손잡이도 없습니다. 문을 열고 닫는 것은 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달렸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의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 드리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일 수 있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합니다. 이제 진심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기 원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천국 문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라고 입으로 고백하면 됩니다. 이 기도를 따라 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시기 원하시는 분은 저를 따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매 주일 교회에 나오셔서 예배에 참석하시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