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동역자입니다 사도행전 18:1-11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로서 귀한 사역을 감당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많은 감동과 도전을 주는 헌신적인 부부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그런 부부들이 많아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부부가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2절은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라고 합니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을 때 아굴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으로 아내는 브리스길라였습니다. 그들이 고린도에 오기 전에는 로마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을 향해 로마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에 아내와 함께 이달리야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입니다. 글라우디오는 로마 제국의 제 4대 황제로 A.D 45년에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강제 추방하는 반유대주의정책을 실시하여 약 2만 5천 명의 유대인들이 고린도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개종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을 위해 로마를 떠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을 위해 거룩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떠나고 머무르고 때로는 버리고 얻어야 합니다. 때로는 가까이 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인생과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로마를 떠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에 머무르고 있던 바울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이른 것은 표면적으로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정책으로 인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하고 헌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 우리 인생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키십니다. 하나님이 비전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제주동도교회에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만남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만남을 하나님이 뜻과 신앙 안에서 바라보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는 전혀 다른 교회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신앙 안에서 만남을 바라보는 자는 어떨까요? 그들에게는 감사함이 있습니다. 자족함이 있습니다. 헌신이 있습니다. 비록 때로는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이런 분은 이래서 감사하고 저런 분은 저래서 감사합니다. 연약하고 부족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채워주라는 것이며,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라는 뜻으로 알고 헌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 안에서 만나게 하신 것은 무엇을 요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향해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함께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알고 받아드리는 자가 섬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입니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로마서 16장 3절과 4절은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고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바울의 헌신적인 동역자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신들의 목까지 내어 놓았었습니다. 이에 바울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의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동역자는 “sunergov"”(쉬네르고스) 로 “함께 일하는 사람, 또는 동료”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탁월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 혼자서 모든 것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6장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비롯한 33명의 동역자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바울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주안에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제주동도교회를 위해 함께 헌신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동역자입니다.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수고하고, 함께 헌신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동역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재정의 동역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교육은 오전에는 성경과 학문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직업 교육을 했었습니다. 바울은 교육을 받으면서 직업 교육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배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교를 하면서 필요한 재정을 교회의 후원을 받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해서 생활비와 선교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을 할 때는 재정적인 것이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과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의 귀에 들려온 소식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고린도에 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먼저 찾아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까? 3절은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 합니다.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생업이 같아 함께 살았습니다.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동역자로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재정에 대한 헌신을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복음을 위해 동역하면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재정의 헌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이나 직장은 단순히 먹고 살고 놀기 위한 재정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선교의 장이기도 합니다. 신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돈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바울은 재정의 헌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후서 9장 7절과 8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인색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재정의 헌신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넘치는 은혜를 주시며 모든 것을 넉넉하게 하심으로 선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와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 헌신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재정에 대한 동역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의 필요를 채울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20주년을 맞이하며 특별히 재정적인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교회 시설 보수와 설립 기념 감사예배를 위해 헌신하지 못한 성도들이 있으면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해 재정의 동역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역의 동역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단순히 재정에 동역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했던 재정의 헌신의 목적은 복음 사역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바울의 사역에 동역을 했습니까? 그들은 바울의 사역에 동행을 했습니다. 18절은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고 합니다.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에서 일년 육 개월을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합심하여 바울에게 몰려가 그를 재판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린도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과 작별을 하고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동행을 했습니다. 동역은 무엇입니까? 사역의 현장에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 주고 곁에 있어 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수리아에 얼마간 머무르다가 에베소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베소에 남아 있다고 무엇을 했습니까? 26절은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고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에베소에 있었을 때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가 왔습니다.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주님의 도를 배워서 알고 있었고, 예수님에 관한 일을 열심히 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요한의 세례 밖에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했으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그의 말을 듣고 따로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아가야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그를 격려하고 아가야에 있는 성도들에게 아볼로를 영접하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볼로는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증언하여 유대인의 말을 이기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동역은 바울의 사역을 계속해서 이어간 것입니다. 나아가 구원 받았지만 아직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양육하여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양육하는 일에 동역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들보다 더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동역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귀한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의 곁에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수고하고 헌신했습니다. 그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단지 바울의 동역만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의 동역자입니까? 고린도전서 3장 9절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 합니다. 바울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동역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나의 동역자라는 것을 알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만나게 하신 것은 동역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재정의 동역자로, 사역의 동역자로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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