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I(calling I) 골로새서 1:24-29 우리 교회는 올 해 20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일어나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교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또한 변화 받아야 거룩한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도전이 멈추면 하나님의 역사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변화 받고 도전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사명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소명입니다. 영어에서는 사명이나 소명을 모두 ‘calling’ 이라고 합니다. 소명이나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중심을 두면 소명으로, 그리스도인이 받은 사역에 중심을 두면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 혹은 사명을 발견하고 감당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교회의 일꾼입니다. 바울이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변화 받은 후에는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생각은 교회로 가득했으며, 마음은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웠으며 교회를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교회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있었으면 합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더 잘 섬길 수 있을까? 하나님과 교회가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을 교회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일꾼은 ‘diavkono"’(디아코노스) 로 ‘종, 고용인’을 말합니다. 또한 교회의 직분 중에서 집사를 말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직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일꾼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꾼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회의 일꾼이라는 분명한 사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교회 일꾼이라는 사명이 있었기에 어떻게 했습니까? 24절과 25절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성들을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채우기를 원했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을 위한 괴로움입니다. 교회를 위한 고난입니다. 괴로움과 고난을 원하는 사람도 없으며, 기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괴로움과 고난을 오히려 기뻐할 뿐만 아니라 원하고 있습니다. 종종 다른 성도들 대문에 괴롭고 교회 때문에 힘들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성도들과 교회를 떠나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자리에서 떠나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가기를 주저하는 것과 중단하는 이유가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괴로운 일이며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울이 원하는 신앙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003년, 2009년, 2015년에 안수집사와 시무권사와 시무장로를 세우는 선거를 하고 임직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20주년이 되는 2019년에 안수집사와 시무권사를 세우기 위해 5월 중에 선거를 하려고 합니다. 5월에 선거를 통해 세워지는 분들은 교회를 위해 더 헌신해야 할 일꾼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지는 일꾼에 대한 상세한 자격은 4월 중에 발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는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서리집사도 마찬가지이지만 선거를 통해 직분을 받는 분들이 교회의 공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적인 행위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직분자들은 자신을 위한 기도는 물론이고 적어도 교회와 성도들과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수요일에 드리는 예배를 기도회 형식으로 하고 있으며, 새벽에 말씀을 나누고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는 헌신입니다. 헌신에는 크게 몸의 헌신과 재정의 헌신이 있습니다. 몸의 헌신은 식사나 청소나 운전을 하거나 교사나 찬양대원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재정의 헌신은 십일조를 비롯하여 연보로 섬기는 것입니다. 특히 직분자들은 반드시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며, 교회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행사 중에 가장 기도가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일꾼을 세우면서 큰 잡음이 없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좋은 일꾼들이 세워질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교회를 위한 괴로움과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회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한 고난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교회의 일꾼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복음의 일꾼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이는 교회를 위해 헌신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먼저 복음이 무엇인가? 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26절과 27절은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숨겨져 왔던 비밀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한 풍성하고도 영광스런 진리의 말씀을 이 세상 만민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이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며,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광스런 소망이 되십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복음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복음의 일꾼으로 사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에베소서 3장 7절은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고 합니다. 바울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일꾼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사역입니다. 28절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라고 합니다. 복음의 일꾼은 세 가지 사역을 합니다. 그것은 전파와 권면과 가르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을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 받은 자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는 일입니다. 복음의 일꾼을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복음의 일꾼으로서 헌신입니다. 29절은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합니다. 복음의 일꾼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지혜와 경험과 능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 안에 있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의 역사를 따라 사역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역사를 따라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4절과 5절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탁월한 지식과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로운 말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를 통해 성령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일꾼으로 헌신할 때 성령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복음과 교회의 일꾼으로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인한 것입니다. 둘째, 직분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인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헌신하고 수고하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 안에 직분에 책임감 때문도 아니고, 징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 때문에 최선을 다해 수고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헌신과 수고가 우리에게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일꾼이 된 것도 축복입니다. 교회와 복음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인생의 전부를 걸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귀한 일에 여러분들이 헌신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교회의 일꾼과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헌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받아 최선을 다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