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6:12-19 예화) 팬인가? 제자인가? 미국 사우스이스트 그리스쳔교회의 카일 아이들먼 목사는 부활절을 앞둔 목요일 오후 예배당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습니다. 부활주일이 되면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 올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크리이스터(Christmas/Easter), 즉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에만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해서 다음 주에도 교회에 찾아올 수 있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크리스터들이 탄성을 지를 만한 설교를 하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설교자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을 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열광하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떠나는데도 쫓아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붙잡지도 않으셨습니다. 카일 아이들먼은 예배당에 앉아 빈 좌석을 둘러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성도의 숫자가 아니라 헌신의 깊이다. 열광하는 팬이 아니라 헌신하는 제자다” 그는 조용히 성경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부활주일에 모인 성도들에게 통렬한 회개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숫자에 연연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카일 아이들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팬인가? 제자인가? 라고 합니다. 그 질문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열광만 하는 팬인가?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제자인가? 를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팬입니까? 아니면 제자입니까? 우리는 팬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제자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팬이 아니라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팬이 아니라 제자를 원하십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1장 12절에서 19절과 마가복음 3장 13절에서 19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제자가 되다’(μαθητάνω)라는 동사는 25회 나옵니다. 반면에 ‘제자’(μαθητής) 라는 명사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264회 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하면 떠오르는 것은 열두 사도입니다. 그러나 이들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예수님을 지지고 추종자가 된 사람들입니다(요 6:66; 요 7:3; 요 19:38),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행 6:1 이하; 행 6:7; 행 9:19; 행 11:26) 예수님의 제자에 대해 표현하는 중요한 세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르심’과 ‘세우심’과 ‘보내심’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시작과 과정과 목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제자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12절과 13절은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자 내려오셔서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본문의 ‘부르사’ 라는 것은 ‘προσφωνέω’로 ‘불러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따로 열두 명을 불러내어 선택하여 사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 사람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와 주도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기도하신 것은 그 일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는 것에 있어 주도권을 갖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13절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과 야고보는 바닷가에서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이 데리고 오기 전에 이미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부르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자가 온전한 제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 제자로 살도록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신 것을 은혜로 알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은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라고 합니다. ‘세우셨으니’ 라는 것은 ποιέω로 ‘만들다, 창조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열두 명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은 열두 명을 선택하여 세우셨습니다. 그들이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절로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월터 A. 헨릭슨은 ‘훈련으로 되는 제자’ 라는 책에서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자는 충성된 사람으로 9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① 하나님이 성경에서 제시한 삶의 목표를 받아들이는 사람, ②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값이라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③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 ④ 종의 마음을 가진 사람, 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⑥ 독립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 ⑦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 ⑧ 쓴 뿌리의 올무에 걸리지 않는 사람, ⑨ 자기의 생활을 훈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훈련을 통해 변화시키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마가복음 3장 14절과 15절은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을 뿐만 아니라 사역의 현장에 데리고 다니시며 훈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삶을 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은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침을 받고 더러운 귀신에서 자유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각종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좇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역사를 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훈련을 받고 온전한 제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훈련 없이 제자가 될 수도, 제자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신앙훈련만 아니라 인생의 고난을 통해 훈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의 훈련만 아니라 삶의 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제자를 보내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과 15절은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세우셨으며 보내셨습니다. 무엇을 위해 보내셨습니까? 전도를 위해 보내셨습니다. 귀신을 쫓는 권능을 주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귀신이 쫓겨 나가는 현장을 보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13절은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그 중에서 열둘을 선택하셔서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사도는 ἀπόστολος로 ‘특사, 또는 대사’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훈련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대사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제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마가복음 6장 12절과 13절은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고 합니다. 제자들은 나가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많은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보냄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 자를 치유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그 사명과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롯 유다입니다. 그는 제자로서의 행복을 느끼지도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한 자로 인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것을 행복으로 아는 자가 헌신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고백한 찬양이 있습니다. CCM 가수 하니가 부르는 행복입니다. 이 찬양의 가사를 깊이 생각하며 진정한 행복을 주안에서 발견하고 고백했으면 합니다. 찬양) 행복 예수님은 우리를 열광만 하는 팬으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제자로 훈련시키십니다. 그리고 복음과 영적 권세와 능력주어 세상을 향해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제자로 훈련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세상에서 제자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제자로 온전하게 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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