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 누가복음 2:25-35 인생은 기다림입니다. 농부는 씨 뿌리고 추수를 기다리고 산모는 잉태함으로 출산을 기다리고 낚시꾼들은 낚싯줄을 드리우고 물고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조급함으로 인해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다림을 방해하는 사단의 충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재미나는 놀이가 아닙니다. 기다림은 처절한 영적 전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기다림’ 입니다. 그 기다림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기다림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25절은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고 합니다. 그 사람은 시므온입니다. 그 당시 시므온은 유대 사회에서 매우 흔한 이름으로, ‘들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네 명의 시므온, 즉 시몬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조상 시므온(눅 3:30), 예수님의 제자 시몬 베드로(벧후 1:1), 안디옥 교회 교사인 시므온(행 13:1)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시므온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25절은 ‘이 사람은 의롭고’ 라고 합니다. ‘의롭다’ 는 것은 δίκαιος (디카이오스) 라는 단어로 ‘옳은, 공의로운’ 이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 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을 가리켜 의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말씀을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은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합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산 위에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는 의인이었기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신앙과 삶을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신앙과 삶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를 믿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25절은 ‘이 사람은...경건하여’ 라고 합니다. ‘경건하다’ 는 것은 εὐλαβής (율라베스) 라는 단어로 ‘두려워하는, 경외하는’ 을 의미합니다. 특히 경건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겸손과 섬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헌신했던 사람들은 모두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절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라고 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이방 선교를 위한 전환점이 된 사람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구제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 역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을 가진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룩한 경건은 하나님의 사람의 매우 중요한 특성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25절은 ‘이 사람은 ...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아침 기도는 “나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게 하소서!” 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야의 오심이 왜 위로요 소망이었습니까?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신이 메시아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린 것은 이스라엘에 진정한 자유와 치유와 해방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신앙을 갖고 인내하며 온전한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초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과 10절은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즉 버리고 돌아와 섬기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서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었습니다. 그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시므온이 의롭고 경건하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그런 신앙과 인내와 능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시므온과 관련하여 어떤 역사를 행하셨습니까? 시므온은 성령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5절은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고 합니다. 26절은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라고 합니다. 27절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시므온 위에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감동하셨습니다. 그는 성령의 임재와 지시와 감동하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렇다면 시므온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성령의 지시와 감동하심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 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성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눈에 부모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야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은 어떻게 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9절에서 32절은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이제 평안히 죽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자 그리스도를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은 주께서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신 것으로 이방 사람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었습니다. 사므온은 자신의 눈으로 구원자를 보았음으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음으로, 그 구원이 이방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음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찬양과 감사가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34절과 35절은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고 합니다.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예수님으로 인해 일어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명과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할 것입니다. 즉 심판과 멸망을 구원과 생명을 얻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난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있는 죄악을 드러낼 것입니다. 즉 회개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혜를 찬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아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며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