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열왕기상 18:20-40 예화) 코카콜라 회장 아사 G 캔들러 코카콜라는 1886년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약사인 존 펨버튼이 탄산수 치료제로 발명한 음료수였습니다. 그리고 1891년에 아사 G 캔들러가 코라 콜라 레시피와 주식 지분을 확보하여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코카콜라 초기 30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아사 G 캔들러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으며 의지력도 약해 번번이 금주에 실패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걷고 있는데 마음속에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거절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캔들러는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캔들러가 충격적인 음성을 들었던 시간에 남편의 금주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내의 기도를 들으시고 남편 캔들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기도를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 때부터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결단하고 금주를 선언했습니다. 알코올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인생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 순간순간 결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에서 위대한 결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생만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위대한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엘리야의 위대한 결단을 통해 귀한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도 위대한 결단을 통해 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 활동하던 시기의 북이스라엘은 사회와 신앙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 위기의 중심에는 아합과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열왕기상 16장 31절에서 33절은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고 합니다. 아합은 오모리 왕조에 속한 왕으로 북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전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했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악을 행하는 것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죄로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고 바알을 섬기며 숭배했습니다. 이세벨은 천성이 사악하고 음행과 술수가 뛰어난 여인이었습니다(왕하 9:22). 그는 사마리아에 지은 바알 신전에서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또한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이전 모든 이스라엘 왕들보다도 더한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합과 북이스라엘을 징계와 심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징계와 심판은 무엇입니까? 17장 1절은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디셉 사람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셔서 수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죄악에 대한 징계와 심판으로 가뭄과 기근이 일어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이 통치하던 북이스라엘에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깊은 계곡과 물이 풍부했던 그릿 시내가 마를 정도였습니다. 또한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사르밧 과부는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먹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삶의 결핍과 기근이 죄로 인한 것이 아닌 것인지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결핍과 기근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들을 점검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위기는 신앙적인 것과 생활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엘리야를 악한 왕 아합에게 보내셔서 영적 전쟁을 제안하게 했으며,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위대한 결단을 하게 했습니다. 특히 엘리야와 백성들의 위대한 결단에 주목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위기는 위대한 결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결단이 우리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위대한 결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결단이 주는 교훈과 도전은 무엇입니까? 첫째,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요청합니다. 21절은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고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 모인 백성들을 향해 언제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작정이냐고 했습니다.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여호와를 섬기고,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를 선택하는 결단을 요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단을 요청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과 15절은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전에 백성들에게 위대한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것 중에 좋게 보이는 것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집은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우상은 엘이야 시대처럼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형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우상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장 5절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고 합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육체의 욕망을 죽여 합니다. 그것은 음란과 더러운 짓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지나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탐심, 즉 지나친 욕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그것을 갖고 있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려야 살 수 있습니다. 버려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버려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길 수 있는 버림과 포기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엘리야가 위대한 결단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 산에 모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과 자신이 믿고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와 하나님 중에 누가 참 신인지 증명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생명을 건 결단이며 도전이었습니다. 만약 바알과 아세라가 참 신이면 엘리야는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은 수치를 당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송아지 한 마리를 각을 떠서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을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없었으며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종교 의식에 따라 더 큰 소리를 외치며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정오가 지나고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미친 듯이 부르짖었으나 아무 응답도 없고 대답하는 소리도 없었습니다. 그 후에 엘리야는 이스라엘 각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돌을 가져다가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그 제단 주위에 물 약 15리터를 부을 수 있는 도랑을 파고 제단에 나무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에 올려놓고 물 네 주전자를 가져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게 한 다음 다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일은 세 번 했으며 물이 단에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무엇을 했습니까? 36절과 37절은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라고 합니다. 엘리야는 저녁 소제를 드리는 시간, 즉 오후 3시에 제단에 나아가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는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회복을 소망하는 기도였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850명이 간구했지만 엘리야는 혼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을 보내며 간구했지만 엘리야는 잠시 드린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자들의 간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기도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고 도랑이 물을 마르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기를 만날 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위기를 만났을 때 근심하고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단을 쌓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엘리야가 위기를 극복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결단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혹시 예배의 제단이 무너져 있지 않습니까? 다시 예배의 단을 다시 쌓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예배를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를 드렸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해야 할 결단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결단을 원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머뭇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했으면 합니다.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을 소욕을 따라 살았으면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합니다. 재물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위대한 결단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위대한 결단이 영적 승리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위대한 결단을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