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누가복음 6:1-11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했던 많은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갈등했던 것은 안식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쉬신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안식일은 현재의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개혁파 교회는 토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성경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날이었습니다(막 16:7).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도 안식 후 첫날이었습니다(요 20:19).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것도 안식 후 첫날입니다(행 20:7). 사도 바울의 방문을 위해 연보를 모아 둔 날도 매주 첫날이었습니다(고전 16:2). 사도 요한이 계시의 말씀을 받은 날은 주의 날이었습니다(계 1:10). 예수님의 부활 후 사도들과 속사도들과 교부들은 토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본문은 안식일과 주일의 관련성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유대교와 바리새인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던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말씀하시고 안식일에 행하신 사역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주일이 어떤 날이며 어떤 날로 지켜야 하는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첫째,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밀 밭 사이를 지나가시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절은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라고 합니다. 그것을 본 바리새인들이 “당신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오?” 라고 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은 것을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것을 어겼다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밀 이삭을 자르는 것도 밀을 손으로 비비는 것도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의 구전법과 전통을 집대성한 미쉬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세세한 규정을 덧붙이고 해석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규정은 243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책망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절과 4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을 하다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요구해서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책망이나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2장 27절은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날이나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둘째, 예수님 자신을 언급하셨습니다. 5절은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에 대한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5장 14절과 15절은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기억하고 안식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 역시 창조와 구속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과 죄악과 사망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을 기억하고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 날이 예수님께 속한 것이며, 예수님을 위해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날만 아니라 모든 날은 주님이 날이며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주되심, 즉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칠일 중에 하루를 안식일로 정해 지킴으로 시간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감으로 우리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신앙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 문제로 인해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안식일, 즉 유월절이 지난 두 번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오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안식일에 일어난 일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첫째, 예배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오른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기에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회당에 온 것입니다. 이는 그가 육체적으로 불편해도 예배에 참석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예배는 중심이며 기둥과 같습니다. 그가 육체의 불편함과 고통을 극복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왔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말라버린 오른 손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그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일이 그런 날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육체의 연약함을, 마음의 불편함을, 상황과 환경을 극복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예배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고 병을 고치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셨음에도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9절과 10절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생명을 파멸케 하는 것이 옳으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일일이 둘러본 뒤에 그 사람에게 ‘네 손을 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의 손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서로 의논했습니다. 악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거룩한 안식일에 악을 행했습니다. 생명을 업신여겼습니다. 분노하고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일 악한 음모를 계획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선을 행하셨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소망을 얻게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주일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일 성수에 대한 개념이 많이 사라졌기에 주일에 예배하지 않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기에 주님을 위해 보내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예배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주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하신 일,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도 주일을 예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지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을 예배하며 선을 행할 수 있는 날로 주셨다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한 날로 보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일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