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허무는 것을 생각하라 유다서 1:5-10 코로나 19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과 관련하여 매우 분주하게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초대교회 담임목사이며,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구리상담소 대표로 있는 신현욱 목사입니다. 그는 1986년에 담임목사가 신천지에 미혹되어 들어가 전국 12지파장의 감사와 교육을 하는 7교육장이 되었습니다. 2006년 육체영생을 비롯한 비성경적인 교리와 재정과 윤리 등의 문제에 회의를 느끼고 양심선언을 하며 탈퇴를 했습니다. 2009년에 총회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졸업했으며 2014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신현욱 목사는 “코로나19가 육적 바이러스라면, 신천지는 영적 바이러스다. 이 두 개의 바이러스가 결합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라 19는 백신이 없습니다. 그것에 걸리지 않거나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면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면역력은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병원균이나 독소 등의 항원이 공격할 때 저항하는 능력입니다. 유다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던 거짓 선지자들, 즉 이단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기록하여 보낸 것입니다. 유다는 거짓 선지자, 즉 이단들이 공격에 대한 영적 면역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격에 저항하고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허무는 자들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유다는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믿음을 허무는 것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믿음을 허물었던 사건은 무엇입니까? 첫째, 광야에서의 원망과 불평입니다. 5절은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을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언약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없으며 대적의 위협이 있는 광야 사막 길이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든 것은 광야 생활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유다는 민수기 14장에 나타난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모세가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을 때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되었으며, 20세 이상 된 자들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신앙을 허무는 것이 불신앙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언제 고난이 끝날지 몰라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광야 생활 중에 만나는 갈증과 결핍과 방황으로 인해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할 상황과 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고난과 역경은 우리의 믿음과 삶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고난과 환난으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거나 허물어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히려 더 온전하고 견고하게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처소를 떠난 천사들입니다. 6절은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라고 합니다. 유다는 신앙을 허무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난 천사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천사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베드로후서 2장 4절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라고 합니다. 본래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로 자기의 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타락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리를 떠났으며 사명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쇠사슬로 결박하여 심판 날까지 어둠 속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교만의 핵심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은 믿음을 허무는 죄악입니다. 예화) 새주파 김성도 한국교회 이단에 김성도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는 아들을 낳고 전신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온전해 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났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병에 걸렸을 때 기도하고 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 생활에 깊이 몰두하면서 입신 등 여러 가지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입신을 하고 예수님을 만났는데 ‘죄의 뿌리가 음란이다’, ‘예수 자신은 억울하게 죽었다’, ‘재림주는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 ‘새 주님이 나타났으니 회개하라’ 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종이 12장에 기록해서 담임목사님께 보여 드리자 ‘사탄의 역사니 조심하라’ 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김성도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국 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새주파라는 이단을 만들게 됩니다. 한국에서 일어나 활동하는 모든 이단들은 김성도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는 교만하여 성경 말씀과 담임목사의 권면보다 영적 체험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도 허물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허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하면 우리 자신의 신앙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앙을 허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겸손하면 자신의 신앙도 세우고, 다른 사람의 신앙도 세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만하여 허무는 자가 아니라 겸손하여 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넘어지게 하는 자가 아니라 일으키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입니다. 7절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고 합니다. 유다는 신앙을 허무는 것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창세기 18장 16절에서 19장 2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롯이 살고 있던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하여 다른 육체, 즉 동성애를 비롯한 죄악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음란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유황불로 영원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심판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허무는 것 중 하나는 불경건입니다. 경건함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인 태도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삶을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 고넬료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사도행전 10장 2절은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라고 합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구원하는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이방 선교의 문을 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경건한 자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는 세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던 이단들, 거짓 교사들은 어떠했습니까? 유다는 성경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 신앙을 허무는 것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 성도들의 신앙과 교회를 허무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8절은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그들은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이단들은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황홀 상태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꿈을 꾸고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와 음성으로 주장했습니다. 지금도 이단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꿈을 비롯한 환상과 체험을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죄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고 지도자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꿈이나 음성이나 환상과 같은 개인적인 체험을 중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온전하고 견고하게 세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비바람이 불고 홍수가 나고 결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성도들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허무는 자들에게 있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비방입니다. 9절과 10절은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천사들 가운데 최고로 높은 미가엘도 누가 모세의 시체를 가져갈 것인지 마귀와 논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미가엘은 마귀에게조차 욕하지 않았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님께서 네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라고 했을 뿐입니다. 천사장 미가엘도 마귀를 비방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우리가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함부로 비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방과 비난으로는 결코 세울 수 없습니다. 디도서 3장 2절은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고 합니다. 비방하면 다투게 됩니다. 다투면 세울 수 없습니다. 비방하지 말고 관용하며 온유함으로 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본능입니다. 10절은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고 합니다. 사람은 이성을 따라 살기에 절제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짐승은 본능에 따라 살기에 통제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4절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고 합니다. 짐승과 같이 본능을 따라 사는 자들은 음탕한 눈으로 죄를 범하며, 연약한 영혼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허무는 사람은 본능의 지배를 받아 육체의 소욕과 정욕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반면에 세우는 자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짐승처럼 본능에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사람처럼 이성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악한 생각과 감정이 아니라 성령의 통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는 누구입니까?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넘어지게 하는 자가 아니라 일으키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비방하지 않으며 본능에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을 허무는 것들을 생각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