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마 1:22-23 예화) 코로라 19로 인한 자가 격리 지난 5월 9일에 이태원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주인이 코로나 19로 확진을 받아 접촉자로 자가 격리를 했던 분이 쓴 글의 일부입니다. “혼자서 했던 자가 격리가 아니라 함께 자가 격리 해주던 사람들 덕분에 같이 미쳐가는 느낌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지만.. 정말 한 번 더 나한테 자가 격리를 하라고 하면 난 정말 못 참을 것 같다.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서 앞에 공원으로 뛰쳐나갈 생각이었다. 점점 이상행동들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화내고 나쁘면 나빠서 화내고 잠 만자고 잠 안온다고 하고 왜 아직도 화요일이냐며 왜 아직도 목요일이냐며.. 나가서 흙 밭에라도 구르고 싶다. 그냥 살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보고 싶다. 카페에서 주문하고 싶고, 편의점도 가고 싶다. 내일만 버티면 이제 나갈 수 있다. 마스크 답답해하지 않을 테니, 그냥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걸 느끼게 된 일주일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자가 격리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해도 가족과 함께 식사도 할 수 없으며, 방문 앞에 음식을 갖다 놓고 가면 가지고 들어와 혼자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혹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정담은 ‘함께 라면’입니다. 비록 한 그릇의 라면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면 그 어떤 음식보다 맛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코로라 19로 인해 매우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견디고 극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전에는 성절 전 날 밤에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귀한 시간들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라 19로 인해 전야행사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성도들과 성탄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말 년시 코로나19 특별방역 대책으로 인해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예배를 위한 최소 인원이 모여 예배하고 있습니다. 성탄예배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많이 무겁고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의 변화와 혼란과 위기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적이 거리가 마음의 거리로, 마음의 거리가 영적이 거리가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교회에 대한 거리가 멀어지며 하나님에 대한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영적 공동체성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었으면 하는 것은 ‘함께’ 입니다. 누구와 함께 입니까? 우리 모두 함께입니다. 하나님과 함께입니다. 그 ‘함께’ 를 가장 잘 나태내고 있는 것이 ‘임마누엘’ 입니다. 오늘은 성탄절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이름, 즉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성경에는 ‘임마누엘’ 이라는 단어는 세 번 나옵니다. 이사야 7장 14절, 8장 8절,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그런데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상황이나 환경은 모두 이스라엘의 위기와 고통스러울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코로라 19로 인해 혼란과 위기와 고통을 겪고 있는 이 때에 가장 적절하고 큰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은 ‘임마누엘’ 입니다. 이 시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소망을 얻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1장 22절과 23절은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고 합니다. 마태는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선지자가 이사야를 통해 주신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약 700년 전에 말씀하셨으며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징조를 말씀하셨을 때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여로보암의 악한 길을 가는 북이스라엘은 아람과 연합하여 남유다를 침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남유다의 왕은 아하스였습니다. 아람의 르신과 북이스라엘의 베가가 동맹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하스와 백성들의 마음은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렸습니다. 이는 매우 두려워하며 떨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하스의 마음을 격려하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르신과 베가가 동맹을 했지만 그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기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침공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은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 예언대로 700년 후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에 대한 증거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00년간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를 ‘하나님의 침묵기’ 혹은 ‘영적 암흑기’ 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산모가 출산을 앞두고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듯이 예수님을 보내실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갈라디아 4장 4절과 5절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때가 이르자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 났으며 율법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자녀로 삼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심에 대한 증거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임마누엘’ 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이에 마태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으며 자신의 집에 초대했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함께 했습니까? 마가복음 2장 15절은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라고 합니다. 그 자리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함께 앉아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을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마가복음 2장 17절은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들에게 의시가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의사는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이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런 체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통해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26장 24절은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고 합니다. 이삭이 흉년이 들어 블레셋의 그날에 거주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복을 주어 자손을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이삭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와 함께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28장 15절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고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다가 돌을 베고 잠을 자다가 꿈에서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지켜 줄 것이다. 나는 너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 전까지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창세기 28장 16절은 ‘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시는데 그것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에 야곱은 자신이 베고 자던 돌을 가져다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집을 세울 것이며, 십일조를 드릴 것을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과 3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고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팔려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모든 일에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에서 두려워하는 이삭과 함께 하셨습니다. 홀로 도피생활을 시작한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형들에게 버림받고 종으로 생활하던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걸음을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동행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 임마누엘을 생각하면서 큰 힘과 용기가 되는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 낙심과 절망,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견디며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탄절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견디고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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