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에베소서 5:1-7 예화) 이름을 바꾸든지 삶을 바꾸든지 하라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BC 356~BC 323, 재위 BC 336~BC 323)으로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나는 내 아버지에게 생명을 빚졌으며 스승에게 잘 사는 법을 빚졌다’ 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와의 스승은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교도소를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왕의 눈에 들어온 죄수가 있어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삶을 바꾸든지 해라. 알렉산더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러운 신앙과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아갈 것을 소망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 곧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악한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집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감당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절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본받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닮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사랑입니다. 2절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서로 사랑 가운데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첫째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버리심으로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알고 느끼게 되면 그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사랑을 알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버리는 거룩한 낭비입니다. 그런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사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자신을 버리신 것은 쓸모없이 낭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제물은 사랑입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드립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찬송을 드립니다. 재물을 드립니다. 생명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귀하고 소중한 것을 드리는 거룩한 헌신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거룩함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구별함이며 탁월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악을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3절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하게 살기 위해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않아야 할 악행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입니다. 음행은 πορνεία(프로베이아) 로 간음으로 합법적인 결혼생활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부도덕입니다. 더러운 것은 ἀκαθαρσία(아카다르시아) 로 불결함으로 이는 생활에서 나타나는 성결하지 않은 것입니다. 탐욕은 πλεονεξία(플레오넥시아) 로 탐심으로 단순히 많은 것을 탐내는 욕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입니다. 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멀리해야할 악한 행위입니다. 그것은 무절제하고 무책임하고 방탕한 생활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가족을 잃고 가정이 깨어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심각한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 악행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가정을 지키며 일상의 삶에서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 줄 믿습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4절은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고 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신앙과 인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지 말아해 할 말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희롱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누추한 말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말로 음담패설입니다. 어리석은 말은 분별력 없이 함부로 하는 말입니다. 희롱하는 말은 멸시하고 조롱하는 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로 해야 할 말은 어떤 말입니까? 감사하는 말입니다. 감사는 헬라어로 εὐχαρις(유카리스) 로 εὐ(좋은)와 χαρις(은혜)의 합성어입니다. 누가 감사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은혜를 받고 깨달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입만 열면 원망과 불평을 하고, 비난과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항상 감사와 기쁨, 축복과 칭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말은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생명의 언어입니다. 행복의 언어입니다. 천국의 언어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고 합니다. 더러운 말이 아니라 깨끗한 말을 해야 합니다. 허무는 말이 아니라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악한 말이 아니라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원망의 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끼치는 말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하는 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순종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매우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경고는 무엇입니까? 5절은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라고 합니다. 바울은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자와 탐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그를 우상 숭배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육체의 쾌락과 죄악 된 생활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상숭배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게 기업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적용하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음행과 더러움과 탐욕을 행한 것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악을 행하면서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죄책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고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연약하여 악을 행하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두 려워 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다시 악행을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악을 행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6절과 7절은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고 합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헛된 말로 속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헛된 말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하는 것을 해도 신앙생활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매우 헛된 말이며 거짓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행하는 것은 우상 숭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여 사랑하며 섬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유투브를 보면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아도, 교회 봉사를 하지 않아도, 음주와 흡연을 해도, 헌금을 하지 않아도, 매주일 교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예수님만 믿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설교를 듣게 됩니다. 물론 그것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구원이 취소가 되거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앙과 불순종과 불경건은 매우 깊은 관련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불신앙은 불순종을 낳고, 불순종은 불경건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또한 불경건은 불순종으로 인한 것이며, 불순종은 불신앙으로 인한 것입니다. 때로는 신앙생활을 편하게 하고 부담 없이 하는 것을 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신명기 11장 26절에서 28절은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지키며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반면에 말씀에서 돌이켜 떠나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 에 축복과 저주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고 누리고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의 일에 동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자녀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증거입니다. 비록 때로는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버리고 드리는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고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불순종의 사람들 사이에 순종하는 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미련하게 사는 것 같고 홀로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서 겪는 고통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하며 거룩하며 순종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