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라(2) 디모데전서 4:6-16 우리 교회의 2022년 표어는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라’ 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며 동역자요 에베소교회를 섬기고 있는 디모데에게 가르치고 맡긴 모든 일을 말입니다. 그 모든 일을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 이 되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꾼이 되어야 합니가?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일꾼이 되기 위해 전심전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7절과 8절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고 합니다. 바울은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한 말씀입니다. 경건은 헬라어 εὐσέβεια(유세베이아) 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삶에 대한 건전한 태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경건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성숙한 생활입니다.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영성입니다. 경건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연단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는 것으로 경건에 이른 영적 훈련입니다. 그 훈련은 망령되고 허탄한 것을 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이단의 교리와 세상의 교훈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경건을 훈련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세속적인 세계관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것으로 바꾸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뀌어야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경건 훈련은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헌신과 복음의 훈련입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이는 육체를 갖고 사는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건의 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에서는 거룩한 삶을 살며 천국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경건의 훈련을 통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 훈련을 통해 좋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고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10절과 11절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고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금생와 내생에 유익이 있는 경건의 훈련을 위해 수고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는 경건의 훈련을 위해 전심전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에 있습니까?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썩어질 것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경건 훈련에 수고하여 힘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건 훈련을 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데 전심전력을 다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시간이 없어서도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이어서도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경건의 훈련을 위해 전심전력을 합니다. 혹시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 헌신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물론 다양한 이유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무엇에 있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전심전력하여 예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며 기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것이 관심이며 중요성입니다.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헌신하고 충성하는 일에 소망을 두었으면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엇으면 합니다. 그것에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12절과 13절은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로 세웠을 때 나이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12절의 ‘연소함’이라는 단어는 20대에서부터 30대 사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단순한 나이만을 뜻하기보다는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나이도, 경험도 부족하여 나이 많은 장로들과 신앙의 연륜이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나이와 연륜이 적은 디모데를 업신여기고 목회자로서 갖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는 나이나 연륜이나 경험으로 인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가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면 교회는 갈등과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신앙과 능력이 있어도 영적인 권위와 질서를 무시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교회 안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반면에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이나 권위를 남용하여 나이와 연륜이 있는 성도들을 존경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에 감사하며 겸손히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무엇에 본이 되어야 합니까? 첫째, 말과 행실입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고 합니다. 야고보는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진정한 경건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인격이며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과 행실에 본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본이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둘째, 사랑과 믿음입니다. 빌레몬서 1장 5절에서 7절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고 합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사랑을 받는 자였으며 동역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었습니다. 그에게 있는 믿음의 교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했습니다. 그에게 있는 사랑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기쁨과 위로를 받게 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사랑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과 믿음의 본을 통해 좋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정절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절과 10절은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고 합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영적 신부로 아름다운 단장을 해야 합니다. 무엇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까? 금이나 은으로 몸을 장식을 하고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한 옷을 입고 소박함과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고상하고 경건하고 순결함으로 영적 단장을 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의 일꾼은 거룩함과 순결함의 본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 즉 거룩한 자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거룩하고 순결한 일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말과 행실에 본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과 믿음의 본이 되었으면 합니다. 거룩함과 순결함의 본을 보였으면 합니다. 그런데 본을 보이는 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이는 항상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역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생활을 잘 관리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본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주장하는 교만한 자가 아니라 본을 보이는 겸손한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직분을 소중이 여겨야 합니다. 14절과 15절은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볍게 여기지 말 라고 합니다.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 는 디모데가 영적 지도자로 세움을 입을 때 주신 권면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또한 ‘조심 없이’라는 것은 ‘멸시하여 소홀히 여긴다’ 는 것입니다. 직분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직분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고, 사명에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준 직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성별된 것이므로 소홀히 여기거나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자들을 임명하면서 주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권면의 말씀을 기억하고 권면의 말씀에 순종할 때 좋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 그 순수함과 결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주어진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순수하게 헌신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성장하고 진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퇴보하고 있습니까? 초심을 잊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 해 직분을 감당함으로 더 성숙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었을 때 어떠합니까? 16절은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과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때, 자신만 아니라 그의 사역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들에 관심을 갖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전심전력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경건의 훈련을 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본이 되고, 직분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전심전력하여 믿음의 진보를 이루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