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요나, 일서서는 성도 요나서 4:1-11 1. Welcome(환영하기) - 서로를 환영하고 축복하는 시간 ➣ 최근에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도해 주세요. 2. Worship(찬양과 경배) - 성령의 감동으로 나아가는 시간 ➣ 찬송 :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찬 512) ➣ 찬양 : 마음이 상한 자를, 우리 함께 기도해,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3. Word(말씀) -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임하는 시간 |본문| 주저앉은 요나, 일어서는 성도 |제목| 요나서 4:1-11 요나가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자 왕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금식을 하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기로 작정을 했던 재앙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요나는 하나님을 향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절은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라고 합니다. 이것은 니느웨를 멸망시키시지 않은 하나님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고 불평을 한 것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몰라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요나는 분명히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사랑이 풍성하시고, 화를 잘 내시는 분이 아니시고, 죄인들에 대한 사랑이 크신 분이심으로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뜻을 수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실 이것은 인정하기에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니느웨를 향해 외친 그대로 하나님께서 멸망해 주기를 원했는데, 그들을 용서하시고 멸망시키고자 하는 뜻을 거두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포가 거짓된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선지자로서 자신의 위신이 실추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수고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면 첫째는 적극적으로는 반대를 하고 대적하여 그것을 철회시키려는 것입니다. 둘째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불평을 하거나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매우 소극적인 방법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방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수용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것이라면 매우 적절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혹시 전에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나 시험 때문에 반대자로, 불평자로, 방관자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헌신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화를 냈습니다.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행동을 보이는 요나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 하나님은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고 하셨습니다. 요나 자신의 체면이나 능력보다 더 소중한 것은 니느웨 성 사람들의 생명이었습니다. 내 자신의 체면보다, 위신보다, 능력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보다 더 넓게 보고, 더 깊게 생각하면 정말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화를 내고 불평을 하던 요나는 어떻게 했습니까? 5절에서 우리가 주목할 요나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요나가 ‘앉되’ ‘앉아서‘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지은 초막의 지붕위에 박넝쿨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에 하나님이 그 박넝쿨을 해치게 하심으로 곧 죽어버렸습니다. 요나는 더위로 인해 온 몸의 힘이 다 빠졌습니다. 우리도 아주 조그만 환경의 변화로 인해 기뻐하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합니다. 삶의 의욕을 불어 일으키기도 하며, 삶의 절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육신의 고통을 통해 영적인 교훈을 주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삶의 고통이 영적인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사랑하는 요나를 향해, 박넝쿨이 주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욘 4:10-11). 하나님은 박넝쿨보다 인간의 생명을, 하나보다는 12만명을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교회와 이웃과 민족과 열방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되는지,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다른 성도들이 무엇을 하든지, 목회자가 무엇을 하든지 그저 방관하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그저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위한 초막이 아닌 하나님의 위한 교회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구경하지도, 방관하지도 말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이제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지금까지 계획하고 기도하고 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인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갖고 계십니까? ☞ 과거의 상처나 시험 또는 낙심으로 인해 주저앉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헌신의 자리로 돌아오셨는지 나누세요. ☞ 자신이 수고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면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됩니까? 그것을 나누고 성숙한 반응을 위해 기도하세요.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방관하지 않고 일어나서 더 헌신할 수 있는 것에 관하여 나누고, 내년의 사역을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서로 나누면서 새롭게 깨달았거나 감동을 받은 것 또는 도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시 119:27) 4. Work(사역) -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시간 ● 3P를 위하여(Pray-기도, Pizza-음식, Phone -관심) ● 가정 교회에 있는 장기 결석자를 심방하고 돌보기 ● 내년의 교회 목회 계획과 개인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