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돌아보라 히브리서 10:19-25 예화) 딸에겐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김영태저 김태영 작가의 ‘딸에겐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는 책이 있습니다. 부제는 ‘공감과 소통에 서툰 아빠들을 위하여’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김태영작가는 “같은 현상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뭘까요? 내 마음이 쓰고 있는 안경의 종류 때문입니다. ‘간섭’ 이라는 마음 안경을 쓰고 바라보면 지적할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관심’ 이라는 마음 안경을 쓰면, 필요한 것이 보입니다. 내 입에서 지적하는 말이 자주 나오면, 나는 ‘간섭’ 이라는 마음 안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안경을 벗어 ‘간섭’ 이라는 이물질을 깨끗이 닦아내면, ‘관심’ 안경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관심과 간섭은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입니다. 관심은 상대방의 만족이 목적이지만, 간섭은 자신의 만족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하는 대로 상대방이 따라 주지 않으면 비난하고 분노합니다. 반면에 관심은 상대방을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간섭은 하면 할수록 관계가 멀어지며 불편하게 됩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관계가 친밀해지고 편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서로 돌아보라’ 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돌아보다’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κατανοέω(카타노에오)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서에서 2번 나오고 있습니다. 3장 1절은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합니다. 또한 10장 24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라고 합니다. 3장 1절의 ‘생각하라’ 와 10장 24절의 ‘돌아보아’ 라는 단어가 모두 κατανοέω(카타노에오)입니다. 이는 모두 관심을 갖고 돌아보라는 의미입니다. 그 차이는 대상에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느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느냐? 다른 성도들을 돌아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돌아보아야 합니까? 첫째,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집에 위대한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이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자유롭고 담대하게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가 되어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돌아볼 수 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22절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라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마음에 뿌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몸도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4장 15절과 16절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제사, 즉 예배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적절하게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갖고,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나가 예배함으로 긍휼과 은혜를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가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예배생활은 어떠합니까? 가장 기본적인 관심은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공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에 참석하여 마음을 집중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23절은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이에 우리가 믿고 고백한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소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박해로 인해 믿음이 흔들렸으며 때로는 믿음의 길에서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과 환경에서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고난과 박해를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6장 19절과 20절은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영혼의 닻처럼 안전하고 튼튼합니다. 그 소망을 통해 하늘 지성소의 커튼을 열고 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관리하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계신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입니다. 그 소망이 있을 때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으며 낙심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는 것인 줄 믿습니다. 둘째,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만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도 돌아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서로를 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서로 돌아볼 수 있습니까? 첫째로,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24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격려입니다. 격려는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주는 것’ 입니다. 영어는 ‘encouragement’(인커리쥐먼트) 로 ‘심장을 주는 것처럼 진심을 다해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는 것’ 이라고 합니다. 헬라어는 παροζυσμός(파록쉬스모스)로 ‘매우 격렬한 자극을 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격려는 용기나 의욕을 일으키기 위해 진심으로 긍정적이고 격렬한 자극을 주는 것’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격려해야 합니까? 사랑과 선행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더 풍성한 사랑을 할 수 있게 격려해야 합니다. 격려는 사랑이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같은 말을 해도 격려가 되기도 하며, 비난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행은 선하고 옳은 행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행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행실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행실입니다. 갈라디아 6장 9절과 10절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고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한다고 상대방도 즉시 선을 행하는 것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선을 악으로 대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선을 행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믿음의 가정, 즉 교회 안의 성도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함으로 더 많은 사랑과 선행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25절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고 합니다. 그날, 즉 말세가 되면 나타나는 현상은 모이기를 중단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한 습관을 버리고 선한 습관을 가질 것을 권면해야 합니다. 말세가 될수록 더 모여야 하고, 더 선한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인생을 사느냐? 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2장 21절은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안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런 습관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습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악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또한 서로 악한 습관 버리고 선한 습관을 갖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혹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악한 습관이 있습니다. 그 습관을 버리므로 온전한 신앙과 경건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구저기(反求藷己)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그 말은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의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 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돌아보는 자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실수나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관심한 자가 아니라 돌아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일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구원의 확신과 천국에 대한 소망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랑과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관심의 안경을 쓰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선한 습관을 가질 수 있게 권면했으면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봄으로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며, 서로를 돌아봄으로 더 온전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