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감사를 회복하라 시편 42:1-5 예화) 감사 찬양(손경민 곡, 지선 노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았던 손경민 목사가 작곡하고 지선 자매가 부른 감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와 곡이 맥추감사절예배를 드리면서 감사를 고백할 수 있게 합니다. 그 찬양을 듣겠습니다.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내 뜻대로 안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내게 고난 주셔서 주 뜻 알게 하신 것 모든 것 감사/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항상 주안에 있음 감사 참된 소망 주심도 감사/나 같은 사람도 자녀 삼아주신 것 모든 것 감사/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감사라는 찬양과 은혜라는 찬양을 들으며 일주일을 보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분주함과 고난 가운데 잊고 살았던 은혜와 감사를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자 하는 한 시인의 안타까움과 열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시인의 간구와 고백을 통해 말씀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신앙을 고백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나은 신앙과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종종 그렇지 못하고 상황과 신앙이 더 좋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과거와 현재는 어떠합니까? 3절과 4절은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시인은 ‘전에’ 와 ‘이제’ 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를 통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에는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었습니다. 거룩한 날을 지키는 사람들과 동행을 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밤낮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거룩한 날을 지키는 사람들과 동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고 마음이 많이 상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이 처한 상황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우리는 함께 거룩한 교회에 모여 거룩한 백성들이 기쁨과 감사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과 달리 기쁨과 감사도 잃어버렸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집인 교회로 인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과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인은 낙심하고 절망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로 인해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준비하며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목한 것은 기쁨과 감사의 회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쁨과 감사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과 감사는 우리의 영작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의 침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반면에 행복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충만한 것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성경은 기쁨과 감사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기쁨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소유와 환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시편 4편 7절과 8절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주신 기쁨은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충만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평안히 눕기도 하고 자기도 했습니다. 시편 30편 11절은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라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슬픔이 변하며 춤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띄우셨다고 합니다. 이는 슬픔과 고통 중에 있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기쁨과 평안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환경이나 상황을 초월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은 안전에 대한 불안과 염려 때문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행하고 이루고 지켜야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의 반석과 방패와 피할 바위가 되어 주십니다. 그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감사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적인 반응이며 고백입니다. 시편 30편 3절과 4절은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스올, 즉 사망에서 끌어내어 살리심으로 무덤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에 모든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송하며 거룩함을 기억하고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편 54편 6절과 7절은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라고 합니다. 다윗은 낙헌제를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했습니다. 기쁨과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그의 서원과 기도를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고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모든 환난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과 신앙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으며,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회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기쁨과 감사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기쁨과 감사가 있습니까? 아니면 슬픔과 원망이 있습니까?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며 기쁨과 감사가 회복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은 기쁨과 감사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는 어떻게 기쁨과 감사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1절과 2절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라고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과 갈망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사슴이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실 물입니다. 이에 영적인 갈증과 기근을 경험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간절함과 절박함입니다. 우리 인생의 기갈과 공허는 무엇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때로는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찾는 자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을 갖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5절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라고 합니다. 지금 시인의 영혼은 매우 낙심하고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조롱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하며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거룩한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낙심과 불안한 가운데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암흑과 같고 사방이 가로막혀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겸손히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입니다. 인간의 낙심과 불안과 절망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 용기와 평안과 소망을 얻을 기회입니다. 진정한 낙심과 불안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데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도 낙심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혹시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슬픔과 원망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지 못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깊은 영적 침체와 낙심과 불안과 절망이 눌려 있지 않습니까? 기쁨과 감사는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을 숨기는 목적은 못 찾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을 찾았을 때의 행복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과 감사라는 보물을 찾는 수고를 하고, 행복을 경험하기 원하십니다. 이에 하나님은 기쁨과 감사를 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 기쁨과 감사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과 갈망함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낙심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기쁨, 환경을 초월한 감사가 회복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쁨과 감사라는 보물을 찾고 행복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