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에 일어나는 현상들 디모데후서 3:1-5 코로나 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많이 활성화된 것은 유투브일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과 관련하여 많은 컨탠츠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많은 관심이 있는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차이와 갈등을 보이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아마 ‘말세’ 혹은 ‘종말’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코로나 19를 말세의 현상, 혹은 종말의 징조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세라는 단어가 부정적이고 불편한 단어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세와 종말을 어느 툭정한 날과 시로 정하고 주장하고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장림을 중심으로 하는 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에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며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따르던 사람 중에 직장생활과 학업을 포기했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반드시 말세는 있으며,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나 인류의 종말에 대해 예언을 하고 그것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서서히 말세에 관한 생각이나 종말 신앙과 재림신앙은 무디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세에 대한 믿음과 태도는 신앙과 생활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깨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경건한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언급함으로 어떻게 말세를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말세를 사는 우리들이 어떻게 종말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알아도 되고 알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인으로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절은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라 합니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말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세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맞이하는 종말의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말세는 어떤 기간을 의미하기도 하며, 어떤 시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세를 기간의 의미로 보면 예수님의 초림에서부터 재림의 기간입니다. 반면에 시점의 의미로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말세를 어떤 특정한 시점이 아니라 기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 지말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말세 중에도 그 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반드시 종말이 있다는 것을 믿고, 또한 세상에 범람하는 죄악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세의 현상을 발견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병도 목사는 말세에 일어나는 현상을 세 가지 관점에서 분류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죄와 공동체를 손상시키는 죄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죄입니다. 첫째, 이기적인 죄입니다. 2절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라고 합니다. 말세에는 자기 자신과 돈을 사랑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죄의 시작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악의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돈에 집착하게 되면 마귀와 정욕에 미혹되어 자기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즉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공동체를 손상시키는 죄입니다. 바울은 2절부터 4절에서 공동체를 손상시키는 죄를 15가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자랑입니다. 2)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무시하는 교만입니다. 3) 하나님과 사람들을 모욕하는 비방입니다. 4)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부모 거역입니다. 5)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6) 세상의 타락한 생활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지 않는 것입니다. 7)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사랑의 결핍을 갖고 사는 무정함입니다. 8) 끝까지 용서하지 않고 앙심을 품고 살아가는 원망입니다. 9) 거짓되고 추악한 말로 다른 사람을 헐뜯고 모함하는 것입니다. 10) 악한 정욕과 말과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1) 온유하지 못하고 거칠고 잔인한 사나움입니다. 12) 악을 좋아하고 선을 추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13) 자신의 유익을 위해 배반하고 배신하는 것입니다. 14)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처신하는 조급함입니다. 15)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만입니다. 말세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죄들이 공동체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죄들은 대인관계를 훼손하고 망치는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죄입니다. 4절은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라고 합니다. 말세는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가치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자색 옷과 화려한 옷을 입고 날마다 향락을 누렸습니다. 그는 결국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며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병도목사는 말세에 이기적이며 공동체를 손상시키며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 죄악에 대한 유혹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죄악을 극복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을 분별하고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세의 특징을 사랑이는 관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는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에 대한 변질과 왜곡의 현상이 말세에 일어납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신앙에 많은 위험과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말세에 어떤 사랑의 왜곡과 변질의 현상이 있습니까? 첫째,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1절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1절은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다른 사람의 인생도 소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은 극단적인 자기 사랑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어야 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반드시 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배려하지 않지 않습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이 중심입니다. 자신을 위해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시간이 나면 예배도 드리고 헌신도 합니다. 하나님의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가 신앙과 기도의 핵심이 되기도 합니다. 교회에 무엇을 요구하지만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헌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현상에 대해 영적 분별력을 갖고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2절은 ‘사람들이....돈을 사랑하며’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의인화하며 섬김의 대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합니다. 재물은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섬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재물을 사랑하고 귀중하게 여기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며 귀중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 돈이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돈을 벌려고 합니다. 때로는 돈이 목적이 되고 사람은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재물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헌신을 결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셋째,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4절은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라고 합니다. 쾌락은 재미와 향락을 말합니다.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은 쾌락에 열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말세가 되면 나타나는 현상은 인생과 신앙에 있어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재미가 있고 즐거운 것을 찾아 기쁨을 누리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 프로그램도 의미보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설교보다 재미있는 설교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재미와 웃음을 주는 프로그램과 설교가 은혜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향락에 대해 무엇을 경고하셨습니까? 누가복음 8장 14절은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라고 합니다. 씨가 가시떨기에 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향락에 기운이 막혀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떨기는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 지배하는 마음입니다. 가시떨기를 제거해야 씨가 바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말세에 우리의 마음은 쾌락, 즉 향략에 빼앗겨 영적인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육체의 쾌락에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쾌락에 마음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의 쾌락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5절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합니다. 말세에 일어나는 죄악으로 인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는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과 같은 죄를 짓지 말고 멀리하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세에 그들의 삶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쾌락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 길이 좁은 길이요, 그 문이 좁은 문이지만 그 길과 그 문을 가는 결단이 있었으면 합니다. 말세에 오히려 자신보다, 돈보다, 쾌락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