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디모데후서 1:9-12
예화) 존 뉴턴(Jhon Nowton)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는 “amazing grace” 입니다. 이 찬송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입니다. 이 찬송을 지은 사람이 존 뉴턴 목사입니다.그는 영국의 런던에서 선장인 아버지와 신실한 성공회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읽어주며 신앙 안에서 양육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11살에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는 선원 생활을 했습니다. 거칠고 방탕한 선원들과의 생활하면서 그도 거칠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아버지 친구의 배려로 노예 무역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관심과 목표는 흑인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통해 많은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동정이나 사랑이란 단어는 사치스러운 감정에 불과했습니다.그를 사람들은 냉혈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뉴턴의 인생에 많은 위험과 역경과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래된 악한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뉴턴이 1755년에 심한 열병을 앓으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위험과 위기를 만났을 때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신선한 능력과 은혜를 계속 공급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한 시간도 서 있을 수 없는 불쌍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존 뉴턴은 30세에 신학을 하고 39세에 성공회 목사가 되어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을 했습니다. 뉴턴은 자신의 묘지명을 “심부름꾼 존 뉴턴은 우리의 주님 되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고 또 자기가 오랬동안 대적하고 파괴하려 했던 믿음을 오히려 전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고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아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의 생애를 사로잡고 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복음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은혜로 살며 은혜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엇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소명을 받았습니다. 9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뜻과 행위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며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고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은혜가 믿음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 인간의 행위는 전혀 개입하지도 작용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가 아닌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신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합니까? 그 누구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받은 것에 자부심을 갖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알고 확신하는 자는 그 누구보다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요, 다른 성도들의 구원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줄 믿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이라고 합니다. 그는 소명과 부르심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소명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명은 어떤 일이나 임무를 하도록 부르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사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거룩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더러움에 빠져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알면 거룩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부르심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1장 26절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육체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습니다. 탁월한 능력이 있는 자도 많지 않습니다. 좋은 가문의 출신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을 부르시고 구원을 받게 하시고 거룩한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거룩한 자로 살며, 소명을 받은 자로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소명 받은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10절은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독론적으로 접근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로, 사망을 폐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통해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며, 사망이 우리를 가두어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해 진노와 저주를 받지 않게 된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생명과 부활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고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복음을 통해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과 2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며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며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은혜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망에서 생명을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성경대로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은혜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11절은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널리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 세움을 입은 선포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진리를 가르치는 자로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바울은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았습니까? 12절은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선포자요 사도요 교사로 사역을 감당하다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수치스럽거나 고통스러운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위한 고난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울에게 분명한 지식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음의 대상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맡기신 복음 전하는 것을 재림하시는 날까지 지켜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어떠한 고난을 겪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할 사명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소명을 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있어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 감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